매년 여름이면 유명 동.식물원은 여름방학 숙제를 미처 하지 못한 초등학생과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정작 동.식물의 특징을 기록하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동.식물원에서 주는 유인물만 챙긴 뒤 쏜살같이 놀이공원 등으로 직행하는 학부모도 상당히 많다.
또 방학 중 단골 과제인 '가족신문' 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만들게 돼 있으나 제출한 것을 보면 전문가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숙제는 학생의 몫이 아니라 학부모의 '일' 이 돼 버린다.
언제부터인가 학생이 할 일을 학부모가 대신하고, 교사의 영역조차 학부모가 쉽게 관여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어떤 초등학교 학부모에게서 "학교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선거운동을 도와 아들을 임원에 당선시켰다" 는 자랑을 들은 적이 있다.
상급학교로 진학해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모 고교의 담임선생님에게 어느날 아침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왔다. 그 분은 "내 아들이 지각을 좀 하더라도 야단치지 말아달라" 며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 학생은 상습 지각생이어서 교육 차원에서 지도를 해야 했지만 학부모는 "아침부터 꾸지람을 들으면 공부에 지장이 있다" 며 그렇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요즘 학부모들은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교사의 권위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교사들이 학생들의 지각이나 결석 혹은 흡연 문제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면, 대부분은 '내 자식이 그럴 리 없다' 는 식으로 자녀를 맹목적으로 감싸기 일쑤다.
지나치게 많거나 어려운 숙제가 학부모에게 학생의 일을 대신케 하고, 그런 일들이 쌓여 학부모가 간섭하지 않아야 할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에까지 관여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런 다음 개선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원희 <경복고등학교 교사>경복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