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언론자유' 아직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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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일간지 '디 버거' (Die Burger)의 취재기자 코버스 로렌스와 사진기자 크리스톨러는 최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두 사람은 살인사건 목격자로서 법원에 출두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증언에 응하면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폭력배들로부터 받아왔다. 이들은 1996년 폭력조직이 마약 밀매업자를 총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현장을 취재했다.

자유 언론이 세계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

언론인들이 취재 현장에서 또는 보도 후에 생명을 잃거나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많이 얻으려는 집단이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인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철저히 보복하고 있는 것이다.

3일은 유엔이 정한 제10회 '세계 언론자유의 날' . 그러나 언론자유의 현실은 그렇게 밝지 않다.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따르면 올해 살해된 언론인은 모두 13명.

멕시코.필리핀에서 2명씩, 중국.방글라데시.에스토니아.인도네시아.코소보.쿠웨이트.팔레스타인.파라과이.태국에서 한명씩 죽었다. 이들은 공무원의 부정부패나 마약밀매, 종교.이념분쟁 등을 취재.보도하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숨졌다.

지난해의 경우 23개국에서 언론인 56명이 피살됐다. 피살자 수는 콜롬비아가 11명으로 가장 많고 러시아 6명, 인도.파키스탄이 4명씩이다. 99년에는 유고 연방에서 25명이 숨지는 등 모두 87명이 사망했다.

언론인은 내전과 종교분쟁 현장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고 있다. 타지키스탄에서는 93년 전체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내전에서 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알제리에선 종교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57명이 숨졌다.

특히 최근 탐사보도가 늘면서 언론인이 마피아와 마약 밀매업자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콜롬비아 등 남미에서는 90년 이후 2백명 이상의 언론인이 희생됐다.

세계신문협회(WAN)는 지난해 말 현재 18개국에서 81명의 언론인이 투옥돼 있다고 밝혔다. 나라별로는 중국 22명, 터키 14명, 미얀마 8명, 에티오피아 7명, 이란 6명 등이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반혁명 선동, 불법단체 가입, 반정부기사 제작.배포 등이다. 체제에 저항하는 언론인에게 재갈을 물리는 방편으로 인신을 구속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한해 6백명 이상의 언론인이 살해.실종.투옥되거나 폭행당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도 언론자유에 희망이 엿보이고 있다.

WAN 등 국제 언론단체는 언론인의 잇따른 희생에도 불구하고 90년 이후 언론자유가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정권 출현으로 언론자유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폴란드.체코.헝가리에서는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남아공의 경우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싹트면서 언론 통제와 검열이 사라졌다.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에서도 민주화가 언론자유의 토양이 됐다.

언론이 통제된 북한.중국.쿠바.이라크 등에서는 최근 인터넷이 체제에 대항하는 언론으로 떠오르면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미흡하긴 해도 가능하게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옛 소련 지역에서는 언론을 교묘히 통제하려는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인들이 싸우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정치적 민주화가 언론자유의 자양분이 되고 있으나 낙후된 경제가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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