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판사 “사법개혁에 법원을 들러리 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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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이 대 법원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인사말 외에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뉴시스]

법원 제도 개선을 둘러싼 대법원과 여권의 ‘권력 충돌’은 오는 26일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법원이 대법원장 직속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자체적인 사법 개혁안을 내놓는다. 이 개혁안이 한나라당 개선안과 접점을 찾을 경우 양측의 갈등은 봉합 수순을 밟게 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대법원은 19일 “26일 열리는 사법정책자문위에서 1, 2심 법관 선발 2원화 등 세 가지 안건에 대한 마무리 논의를 거쳐 건의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측은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논의를 시작한다면 생산적인 협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제시한 법관인사위원회 개편과 대법관 증원 등 상당수 내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타협의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심 업무 과중은 대법관 증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법무부 장관, 대한변협 회장 등이 추천한 외부 인사들로 법관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 역시 삼권 분립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증원과 관련해선 “대법관이 될 길을 넓힘으로써 적전분열을 노린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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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이날 대법원은 대외적인 의견 표명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사상 초유의 ‘법원행정처장 성명’이란 초강수를 쓴 만큼 일단은 여당의 대응을 지켜보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출근길에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지만 “ 고생이 많다”는 인사말 외에는 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선 법원 판사들 역시 “사법개혁을 한다면서 법원을 들러리 세우는 것이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집단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법원 내부적으론 “법무부와 검찰의 입김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한 판사는 “개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간 법무부와 검찰에서 주장해오던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선안을 발표한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에 검찰 출신 의원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위 위원 12명 중 검찰 출신은 5명, 판사 출신이 3명이고 변호사 출신은 2명이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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