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④ 주한 캐나다상의 시몽 뷔로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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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 뷔로 회장이 직접 만든 고추장 삼겹살·낙지볶음을 선보이고 있다. [정치호 기자]

“쫄깃쫄깃한 삼겹살과 낙지를 매콤한 고추장으로 한데 볶아놓은 게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매운맛 때문에 입 안이 얼얼하지만 정말로 ‘중독성이 강한((addictive)’ 음식이에요.”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CanCham) 시몽 뷔로(48) 회장의 말이다. 뷔로 회장은 주한 외국인 CEO들 사이에서 ‘매운 맛의 달인’으로 소문이 나있다. 한식당에 갈 때마다 반찬 중에서도 유독 짭짤하고 매운 맛이 강한 장아찌 종류나 고춧가루와 젓갈이 듬뿍 들어간 전라도식 김치를 찾기 때문이다.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를 주문할 때에도 요리사에게 항상 양념을 ‘엑스트라 스파이시(extra spicy: 특히 맵게)’로 해달라고 요청한다.

다국적 컨설팅 업체 ‘벡티스’의 대표이기도 한 뷔로 회장이 이처럼 매운 맛의 한식에 매료된 것은 1986년 여름 무렵 고추장 삼겹살 낙지 볶음을 맛보면서다. 당시 국제리더십학생단체 (AIESEC)의 소개로 한국의 유공 (현 SK에너지) 국제금융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뷔로 회장은 기숙사 동료의 권유로 이 음식을 처음 먹어봤다. 맵지만 깊은 양념 맛의 매력을 깊이 빠진 그는 2년의 인턴 기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기숙사 정문 앞에 있던 허름한 삼겹살 낙지 볶음집을 찾아가 속을 든든히 채웠다고 한다.

인턴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갔던 뷔로 회장은 2001년 한국을 다시 찾아 컨설팅 전문업체인 벡티스를 세우고 해외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한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건 처음이라는 그는 먼저 야채와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뒤 간장, 고춧가루, 꿀, 다진 마늘, 생강 등의 양념까지 직접 맨손으로 버무렸다. 양념 맛을 한 입 본 다음, 곁에서 도와주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나은선 주방장에게 “한국 음식은 역시 손맛”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음식이 완성되자 나 주방장이 밥 한 공기와 따끈한 미역국을 내왔다. 그는 “바쁜 일정으로 점심을 거른 참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다”며 신선한 상추와 깻잎으로 능숙하게 쌈을 만든 후 한입에 먹었다. “마니피크(Magnifique: 끝내줘요)!” 맛을 음미하던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경영자문가인 그는 한식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식을 성공적으로 수출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시장 세분화 분석과 현장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합니다.”

그는 외국인의 입맛은 한국인의 입맛과 다르기 때문에 타국의 맛과 문화를 먼저 살펴보고 비교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뷔로 회장은 “모든 한식이 외국인의 입맛에 맞을 것이라는 기대와 착각은 버려야 한다”며 “불고기와 비빔밥과 같은 대표적인 음식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해외에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식 재료에 대한 열린 마음도 강조했다. “중국산 재료를 가지고 김치를 만들어 팔아도 김치는 한국 고유의 것입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한국산)’에 집착하기보다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 한국에서 나온 것)’이라는 정신을 갖고 조리법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식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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