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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약속 뜸 들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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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프랑스 간 최대 외교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 반환 문제가 일부 진전되는 듯하다. 1993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반환 원칙에 합의한 이래 17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최근 자크 랑 프랑스 하원의원이 ‘좋은 결과’를 예상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영구임대’를 통한 사실상 반환 방식을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정했음을 밝히는 외교 문서를 프랑스 측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교장관은 19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도서 반환 문제에 "가능한 모든 협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갖 곡절을 거친 탓에 해결 과정에 문제점이 남는다 하더라도 해묵은 숙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외규장각을 유린, 방화한 프랑스 로즈 제독의 행동은 악랄한 약탈이었다. 지난 1월 재판에서 프랑스 정부와 법원도 ‘약탈’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법원은 여전히 외규장각 도서 소유권은 프랑스에 있다고 판결했다. 제국주의 시대 수많은 외국 문화재를 약탈해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로선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토록 판결할 경우 예상되는 ‘봇물 소송’을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 문화대국을 자임하는 나라로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현실적 어려움을 내세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속 좁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법원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청구 소송을 낸 문화연대 측은 영구임대 방식을 공식 입장으로 프랑스에 통보한 정부에 비판적이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임대’로 돌려받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원칙론이다. 이 단체는 이집트에 2만5000점의 유물을 반환한 영국, 미국으로부터 문화재와 철학자 데카르트의 서신을 각각 돌려받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례를 들어 당당하게 돌려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문화연대의 주장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영구임대’를 통해 외규장각 도서를 조기에 돌려받을 수 있다면 그 방법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실효적으로 돌려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일본과 서양 각국에 산재한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실현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프랑스 리옹 대학 이진명 교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대리석판과 옥책(玉冊) 등 외규장각 문화재가 더 소장돼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만이 아니라 이들 문화재 반환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1993년 약속 위배로 한국인들의 배신감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길 바란다. 문화대국의 면모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번엔 외규장각 도서는 물론 문화재까지 뜸 들이지 말고 속히 ‘반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