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재 밀매단 며칠간 보물 싹쓸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검찰에 적발된 문화재 밀매단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 수법=李모(59)씨 등 전문 절도범들은 며칠분의 음식을 준비해 전북 완주 송광사에서 높이 5~6m 대형 불상의 등쪽 뚜껑을 열고 들어간 뒤 2~3일 동안 기거하며 보관 중인 유물을 전부 빼낸 것으로 밝혀졌다.

현직 경찰관 孫모(40)씨는 이들이 들키지 않고 유물을 사찰 밖으로 옮기도록 망보는 역할을 하다 구속됐다.

밀매단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화첩.그림 등이 보관된 유명 종가집을 지키는 경비견을 청산가리가 든 고기로 유인해 독살하기도 했다. 도난당한 문화재는 골동품 수집판매상 등의 손을 거쳐 공소시효(장물취득 5년)가 지난 뒤 '발굴 문화재' 로 둔갑해 유통됐지만 수익성이 낮은 일부 불경이나 탱화는 증거 인멸을 위해 불에 태우거나 찢어버리는 일이 상당수 벌어졌다고 검찰은 밝혔다.

문화재 절도범들은 이같은 범행으로 유명 사찰의 불상안 유물이 거의 없어지자 최근 세워진 불상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최근 세워진 불상 내부에는 귀금속 등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회수한 문화재=검찰이 수집상 具모(56)씨로부터 압수한 문화재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료는 용비어천가 판본 7권이다.

이 판본은 임진왜란 후(16세기 말)인 조선 선조 때 간행된 50질(1질은 10권) 중 일부로 현재 국내에는 7질만 남아 있는 국보급에 준하는 문화재라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검찰이 압수한 문화재 가운데 경남 합천 해인사 중건(重建) 경위와 과정을 기록한 발원문(發願文)은 세조 때 주변 국가와 친선 목적으로 팔만대장경 50본을 발간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등 보물급 문화재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또 태고종 본산인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도난당했던 '능엄경 언해본' 은 불경인 '능엄경' 을 한글로 풀어쓴 것으로 세조가 한문의 구절 끝에 약호로 토를 단 것을 학자들이 번역했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