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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형 판매보수 1% 이하로 펀드 투자자들 연 2000억 수익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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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2년 전 국민은행 창구에서 미래에셋인디펜던스펀드 1억원어치를 산 김모씨는 과도한 펀드 판매보수 때문에 늘 불만이었다. 김씨가 펀드 판매사인 국민은행에 내는 보수는 연 1.7%로 1억원당 170만원꼴이다. 이는 펀드를 굴려 주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내는 운용보수(연 0.73%) 73만원보다 배 이상 많다. 김씨는 “판매사로부터 받는 서비스라는 게 간간이 날아오는 우편물뿐인데 왜 이렇게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와 같은 펀드 투자자들의 불만이 누그러들게 됐다. 금융위원회가 연 1.5% 선인 기존 주식형 펀드의 판매보수율을 5월부터 1% 이하로 내리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신규 펀드의 판매보수는 앞서 지난해 말 1% 아래로 인하됐지만 김씨와 같은 기존 펀드 투자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 다만 금융위는 3년 이상 투자자들은 1.0% 이하로 당장 인하하되 1~2년 차 투자자들은 1.4%와 1.2% 등으로 체감해 내려 주도록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 중 판매보수가 1.0%를 넘는 펀드는 1500개(52조2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들 펀드의 평균 판매보수는 1.6%로 펀드 판매사들이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지난해 1조6500억원이었다. 금융위는 이번 인하 조치로 펀드 투자자들이 매년 2000억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하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기형적인 펀드 보수=국내 주식형 펀드의 판매보수율은 미국(0.23%) 등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높다. 미국에선 첫 투자 때 판매수수료를 별도로 떼는 펀드가 많긴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판매보수가 과도하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운용보수는 평균 0.64%로 미국(0.89%)보다 낮다.

이처럼 한국의 펀드보수 체계가 불합리하게 짜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과거 한국·대한·국민 등 3투신 시절 펀드 판매와 운용을 한 회사가 다 할 때의 보수체계가 그대로 온존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당시 3투신은 증시 부양에 내몰려 환매 펀드(미매각 수익증권)의 주식을 자기계정으로 떠안기 일쑤였다. 이런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는 투신사의 판매보수를 대폭 높여 줬던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펀드의 판매사와 운용사가 분리됐고 환매 펀드의 보유 주식도 즉각 매도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그럼에도 펀드 판매사들은 과거의 펀드보수 체계를 유지하며 큰 수익을 챙겨 온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판매보수 인하에 대해 정부가 관치로 업계의 팔을 꺾은 결과라는 불만의 소리도 나온다”며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합리한 보수체계를 선진국형으로 바로잡는 작업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1%포인트의 파워=국내 주식형 펀드의 총보수(판매+운용)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대략 연 1%포인트 높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펀드에 장기 투자하는 사례를 추적하면 투자 수익이 엄청나게 벌어진다. 총보수가 연 2.43%인 미래에셋인디펜던스의 경우를 보자. 1억원을 넣어 연 10%의 수익률을 올리며 10년간 투자한다고 했을 때 고객이 내는 비용은 모두 3573만원이다. <그래픽 참조>

이를 제외하고 10년 뒤 손에 쥐는 돈은 2억555만원으로 실제 투자수익률은 105%가 된다. 이에 비해 총보수가 연 1.43%로 1%포인트 낮아질 경우 투자액이 2억2623만원으로 불어나고, 수익률은 126%로 21%포인트나 높아진다.

김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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