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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범죄자와 예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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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는 범죄자의 유전인자로 가득 찬 머리통을 가졌다. 내게 가장 감명 깊은 책은 '도둑일기' 다. 나는 장 주네를 숙독.애독했다."나폴레옹은 깃발을 펄럭이면서, 수많은 기병을 앞세우고 굉장한 행렬을 이루면서, 으스대면서 이 길을 갔다. 그로부터 수백년 후 나는 마약을 몸에 감추고 경찰에 쫓기면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때에 전 남루한 옷을 입고 굶주림과 추위, 공포에 떨면서 같은 길로 대륙을 가로질러 북상하고 있다." '도둑일기' 중의 문장이다.

물론 정확한 문장이 아니다. 나는 40년 전에 읽은 걸 확인하지 않고 그냥 말한다. 나는 역적들이나 도둑, 아니면 미친 사람 같은 아웃사이더들과 감성을 일치시키면서 독서하는 버릇이 있다. 예술가의 자의를 빌려 말하자면 '도둑일기' 중 이 한 덩어리 문장이 40년 동안 내 머리통 속에서 살면서 새끼를 친다. 민족사관.민중사관.해방신학.제3세계…. 이런 모든 단어가 그 속에서 뒤섞여 자라난다. 더 나아가 휘몰아치는 바람이 돼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마치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처럼. 마약 운반책으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의 처절함을 체험하는 듯한 정신상태로 40년을 살았다.

내가 감옥에 안 가고 집에서 살고 있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안 들키고 숨어 사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고백하지만 그렇게 나에게는 잠재적 범죄충동이 일상적이다.

나는 집에서 일한다. 집안에서 홀로 있을 때는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고 일한다. 그럴 때는 평화롭다. 평화가 아니라 아무런 충돌이 없다. 완전히 혼자이므로 넓디넓은 우주에서 맘껏 혼자 날아다니므로 범죄충동도 없다. 홀로 있을 때는 절대적으로 평온하다.

그런데 밖에만 나가면 범죄충동에 사로잡힌다. 사회적 금제(禁制)에 대한 나 나름의 저항일지는 모르겠지만 길바닥에 즐비한 흰 줄, 노란 줄을 보면 미치면서 분노한다. 나는 그냥 아무 데나 막 뛰어다니고 싶다. 아무 데나 막 걸어다니고 싶다. 그 노란 줄, 흰 줄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가 그렇게 오랫동안 눈물어린 눈으로 나를 타일렀는데도 나는 밖에 나가 땅바닥에 그려진 노란 줄, 흰 줄을 보는 순간 미치기 시작한다. 그리로만 다니라고 말하는 걸 보면 땅바닥을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다.

일차적으로 범죄성의 분노가 치밀고 한참 절망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 나더러 이런 데서 살란 말이지! 이렇게 줄을 막 그어 놓은 데서 살아가란 말이지.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하고 누가 따지면 내가 지금 만들었어 하고 대든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무수히 법을 만들어 놓고, 내가 태어나 그들이 만든 법에 따라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나를 미치게 한다. 범죄충동으로 머리를 터지게 한다. 그 법들은 내가 안 만들었다. 내가 그 법을 만드는 데 동의한 적도 없다.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오래전에 미국 청소년 범죄자들의 작품전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분출하는 에너지를 봤다. 예술가의 전형 같은 강한 이질감을 읽었다. 그들의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 자체가 힘차고 자유롭다. 그런데 그들은 갇힌 울타리 속에서 그런 작품들을 만들었다.

괴팍한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파괴적인 사고를 하는 머리가 둘이 똑같다. 범죄자와 예술가. 사회적인 규정을 압박으로 느끼지 않고 맘대로 행동한다는 면에서 똑같다. 오로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출발은 똑같이 불만이다. 범죄자들은 법으로 만들어 놓은 행동지침을 지키지 않는다. 그 울타리를 부숴버린다. 옭아매는 규정을 무시한다. 아예 머릿속에 담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와 일치한다. 범죄자들은 행동으로 실제 사회를 부숴나간다. 파괴적인 방법으로 그 짓을 해나간다. 어떤 면에서 예술가들도 목숨을 걸고 상상으로 작품을 통해 사회를, 고정관념을, 사회통념을 깨부수며 나아간다. 역시 나만의 과격한 생각일까.

김점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