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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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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기근(大饑荒)-중국인이 망각할 수 없는 기억’ 신중국 성립 60주년의 찬가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돌연 빼어 든 제목이다. 기사는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의 한 촌로를 인용한다.

“1959년부터 3년간의 대기근 동안 수백 명의 이웃이 굶어 죽었다. 들과 산에는 캐먹을 나무뿌리 하나 없었다.” 『남자의 반은 여자』의 작가 장셴량(張賢亮)도 등장한다. “대기근 동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는 먹을 것을 찾아 울부짖었다. 인간의 최저선, 야수의 경지였다.”

월간지 염황춘추(炎黃春秋)도 가세했다.

“펑양현 우마(五馬)공사의 간부는 종자를 먹거나 항의하는 농민에게 매달기(吊), 구타(打), 묶기(捆), 얼리기(凍), 햇빛태우기(曬), 벌금(罰), 감금(關), 굶김(餓), 가옥폐쇄(封門), 생매장(活埋) 등 형벌을 가했다.”

대기근으로 3000만 명이 죽어 나갔다. 정부는 재해와 소련 전문가의 철수를 원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인재(人災)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공사, 대약진 운동이 주범이다. 중국과 홍콩의 일부 정치학자들이 “대기근 사망자는 사실상 사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사실 중국은 사형 집행이 가장 많은 국가다. 중국의 공식 확인은 없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2006년 1010명이 사형당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집행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중국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 사형 판결 가운데 70% 정도가 완형(緩刑)이다. 2년간 잘못이 없으면 무기로 감형하는 제도다. 1997년 1월 기존의 총살형 외에 주사에 의한 약물형이 형사소송법에 추가됐고, 그해 3월 28일 쿤밍(昆明)에서 처음 집행됐다. 2006년 10월 31일 법원조직법을 고쳐 사형 판결의 비준권을 최고인민법원(대법원)으로 귀속시켰다. 2007년 한 해 동안 증거부족·부당절차·과잉양형 등의 이유로 사형판결의 15%가 뒤집혔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16일 사형집행 검토를 밝혔다. 사형과 범죄예방효과 사이의 연결고리는 취약하다고 판명 난 지 오래다. 중국이 사형 판결을 줄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형 집행은 국민의 격앙된 법 감정만 고려해선 곤란하다. 사회적 구조(救助)의 결여와 무관심, 외교 문제 등 다방면에 걸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근본 해결책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사형 집행부터 들고 나오면 경솔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진세근 탐사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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