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 지도] 거대과학의 비판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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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60년대 초 미국의 앨빈 와인버그(전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소장)는 이미 관리자에 의해 좌우되며 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되는 거대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거대과학은 국방과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성장했기 때문에 와인버그의 이 경고는 과학의 군사화를 우려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최근 거대과학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들로는 피터 갤리슨(하버대).대니얼 케블스(캘리포니아공대).존 하일브론(버클리대).로버트 자이들(미네소타대).도미니크 페스트르(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소).존 크리거(파리 과학기술사 연수센터)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갤리슨은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을 비롯한 20세기 실험물리학 전반에 대해 논의하면서 거대과학의 다양한 속성을 다루었다. 페스트르와 크리거 등 유럽의 학자들은 CERN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거대 과학을 비교했다.

그들은 국방연구와 밀착된 미국의 거대과학 연구와 국제간 협동 연구를 중시했던 유럽의 연구를 비교하면서 유럽이 미국보다 완벽한 실험 장치를 갖추고 순수한 학문적 연구에 정진할 수 있게 된 근거를 제시했다.

국제 협력이란 일반적인 성격상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초국가적 과학(Transnational Science), 탈식민주의 과학(Postcolonial Science)에 대한 연구와 병행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 경향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셰런 트래윅(마운트 홀리오크대)을 들 수 있다.

그녀는 미국의 스탠퍼드 선형가속기 연구소(SLAC)와 일본의 국립 고에너지 연구소(KEK)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인류학적인 방법을 원용해 비교.분석했다. 그녀가 스승-제자 사이의 도제적 성격이 강한 일본의 연구 체계를 인류학적인 족내혼(族內婚)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거대과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과학 정책에 대한 비판과도 연결된다. 이 계열의 연구자로는 우선 루이스 피엔슨(사우스웨스턴 루이지애나대)을 들 수 있다.

피엔슨은 독일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 과정에서 외국의 경쟁자들을 문화적으로 압도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사모아.상하이(上海) 등지에 토착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정밀 과학 연구소를 설립해주는 등 과학을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보고 이것을 문화적 제국주의라 불렀다.

서구식 거대과학기술을 무턱대고 따라가기보다 제3세계 나름대로의 독자적 발전을 위해 대안기술 연구를 강조하는 흐름에는 인도의 경제 개발 정책에 관여했으며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말로 '적정기술론' 을 강조했던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업이 바탕이 되고 있다.

탈(脫)식민주의 과학과 연관시켜 거대과학을 다룬 연구자로는 인도의 핵개발 및 거대미터파 전파망원경(Giant Metrewave Radio Telescope) 건립 계획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도와 서방의 거대과학을 비교한 이티 아브라함(뉴욕 사회과학연구위원회)을 들 수 있다.

인도 학자들의 탈식민주의 과학 연구는 부분적으로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컬럼비아대), 호미 바바(시카고대) 등 인도 출신 인문학 연구자들의 작업과 간접적인 연결을 맺고 있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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