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주택가 파고든 바카라 도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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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고급 빌라 4층에 경찰관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야외 테라스까지 갖춘 80여 평 규모의 빌라는 겉으로 보기엔 부유층이 사는 고급 주택이었다. 하지만 실내에 들어가니 전문 딜러 2명이 원탁의 테이블에서 손님 10여 명을 상대로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른바 ‘바카라’라는 도박이었다. 테이블엔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만원 정도 되는 칩이 쌓여 있었다. 주점이나 바 등에서 주로 열리던 불법 도박장이 최근 강남 주택가로 파고들고 있다. 강남 고급 주택은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유흥주점에 비해 외부인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5일 강남 고급 주택가에서 50억원대 규모의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도박 개장 등)로 폭력조직 K파 서울지부장 송모(39)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자금책을 맡은 양모(33)씨 등 3명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호남 조폭 K파의 서울 총책 송씨 등이 도박장을 운영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강남 서초·삼성·역삼 일대에 고급 빌라와 주상복합 아파트 4채를 빌려놓고 2~3주에 한 번씩 장소를 바꿔가며 매일 도박판을 벌였다. 강원랜드나 마카오 카지노 등에서 상습 도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책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도박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 ‘오늘은 어디서 도박장을 연다’는 정보를 알렸다. 돈을 잃은 손님을 위해 현장에서 연이율 520%로 일명 ‘꽁지돈’(급전)을 빌려주기도 했다.

도박장은 한 사람이 적어도 2000만~3000만원씩 입금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회원제로 운영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빌려준 ‘꽁지돈’까지 합치면 하루 판돈이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여간 도박장을 운영하며 3억여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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