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기회의 이땅을 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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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 칼럼 '모두들 떠난다는데' 가 나간 후 많은 독자들이 전문적 조언을 해주셨다. 떠나려는 사람에게 꼭 이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왜 떠나□ 한국이야말로 기회의 나라다. 한국만큼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진짜 프로들은 외국에서 들어오고 있는데 왜 나가?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보라, 세계 유명 회사들이 한국에 지점을 열고 있지 않느냐. 증권시장에 투자를 하고 부동산만인가, 한국 회사를 사들이고 있다. 이젠 순수 한국 회사가 없다. 내로라 하는 금융계 인사, 벤처 기업가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이러다 온통 외국 사람 차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된다. 한국에서 장사가 안된다면 그 약은 사람들이 왜 들어오겠어.

자선사업을 하겠다고 들어오는 게 아니다. 돈 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이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증거다. 전문적 프로의 눈에는 한국엔 길에 돈이 굴러다닌다는데. 그걸 두고 어딜가?

한참 전 일이다. 교환교수로 온 일본 친구가 내가 사는 행색이 하도 초라해서인지 '돈버는 힌트' 를 주고 떠났다. 골프 회원권과 아파트를 사라는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 사두라는 것. 골프 회원권은 1백만원 남짓이고 여의도 아파트는 헐값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난 그저 듣고 넘겨버렸지만 그 친구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파트는 몇달새 몇배가 뛰고 회원권은 몇년 사이 1백배 가까이 뛰었다. 이럴 수가? 땅을 쳤지만 때는 늦었다.

이제 그런 횡재는 사라졌지만 전문가의 눈엔 그래도 보이는 모양이다.

프로의식이 부족해 안보일 뿐이다. 어느 벤처 사장은 붕어빵 이야길 해주었다. 서울의 한 붕어빵 장수는 명성이 대단하게 됐지만 아직도 그 골목에 그대로다. 전문적 프로 기질을 발휘해 고객의 입맛.기술.시간 생활대 등을 면밀히 연구.개발, 상호등록까지 했다면 벌써 전국, 아니 해외마저 체인점이 열리고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산골에 현풍 할매 곰탕도 이젠 전국 규모로 발전되지 않았던가.

외국 간다고 안되는 일이 될 것도 아니다. 세계화.변화, 새로운 도전이라면 좋다. 그러나 도피용으로, 혹은 억울해서, 실패해서…. 이건 안된다. 어느 사회이고 사람 사는 곳엔 부조리가 있다. 여기가 최악이라고 하는 것 역시 인간심리의 함정이다. 남의 밥 콩이 굵어 보이는 법, 남의 것은 좋아 보인다.

이 세상 어디엔가 내 이상을, 내 꿈을 일굴 수 있는 곳, 내 실력을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있으려니 하는 건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다. 이 함정에 빠져선 안된다.

듣기 거북한 소리겠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엔 모든 게 안정되고 자리가 잡혀 있다. 허점이 없다.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다. 더구나 엉성한 실력으로 말도 안통하는 생판 낯선 곳에서 무얼 어쩌겠다는 소린가. 흔히들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당신에게 그건 기적 이상의 기적이다. 그게 꿈이라면 꿈 깨라.

정말 꾸려면 코리안 드림이어야 한다. 한국엔 아직도 허점이 많다. 엉성하다. 모든 게 자리가 잡혀 있지 않다. 부조리.혼란, 어지럽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떠나야 한다지만 그러기에 여기가 기회다. 여기서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거다.

이젠 한국도 시장 규모가 크다. 물동량만도 세계 10위권이다. 사회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다. 인천 앞바다에 세계 제일의 완벽한 공항을 만든 나라다. 우수한 인재, 기술, 유통 시장, 금융 시스템, 정부의 지원…. 이 지구상에 이런 기회의 땅은 정녕 없다. 50년 전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50년 후라면 역시 힘들다. 왜냐하면 그때는 한국도 자리가 잡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가 기회다. 해외를 둘러보는 건 좋다. 거기서 안목을 기르고 선진적인 걸 배워 돌아오면 그제사 한국 시장에 틈새가 보일 것이다. 무엇이든 먼저 하면 전문가다. 그땐 진짜 프로가 된다.

진짜 프로가 안되니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프로들의 조언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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