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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세득화백을 추모하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7일 별세한 이세득 선생은 치밀한 성향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분이었다.

특히 흔히 일반인들이 화가에게 갖기 쉬운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고, '건강한 미술인=생활인' 이라는 새로운 상을 몸소 정립하고 실천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해 항상 열린 가슴과 배우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 우리는 어렵고 모르는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을 찾곤 했었다.

1940년대초 일본유학후 귀국해 한국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선생은 뜻한 바 있어 50년대말 다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의 정체성을 국제적인 조형어법으로 구현한다는 화두에 매달린 그분은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다시 추상으로 전이해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속에서 그 모색의 길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선생은 또한 각종 국제미술교류전을 유치, 혹은 기획함으로서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와 외국미술계와의 국제교류에도 교두보 역할을 했었다.

아울러 공공건물의 조형장식물이나 타피스트리도 제작해 순수미술의 영역확대에 있어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요즘과 분위기가 판이한 60년대 당시 미술계에선 이를 외도로 치부해 선생은 적잖은 비난과 빈축을 감수했었다.

미술의 공공적, 사회적 기능에 대한 신념으로 계속하신 작업이다. 선생은 또한 뛰어난 행정력과 일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치밀성과 조직력을 가진 분이셨다. 최초의 규모있는 사립미술관인 선재미술관의 초대관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한국미술계의 여론형성층이라 할 수 있는 현대미술관회의 설립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점점 사람들이 영악해지고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요즈음 선생의 별세는 그래서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송미숙 <성신여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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