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교육 4반세기] 8. 판박이 교실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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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평준화 교육 4반세기.

평준화는 그동안 국민의 교육기회를 넓히고 중학교부터의 조기 입시과열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학교교육의 형평성만을 지나치게 강조,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늘렸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이제 평준화의 양달에 가려 속으로 곪아온 응달에도 빛을 비춰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평준화의 큰 틀은 유지하되 적극적 보완책이 요청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과 능력에 따른 맞춤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단선적인 교육과정 대신 소질과 적성을 키워주는 복선형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학생들에게 학교선택권을 늘려주고, 교육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학교선택권.다양성 확대〓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고교교육이 아니라 대학이 신뢰할 수 있는 고교교육이 돼야 한다" 며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주장했다. 학생선발.등록금.교과과정.교사처우에 자율권을 줘 교육의 질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김흥주 교육정책연구부장은 "교육 여건의 평등을 뜻하는 평준화제도가 교육내용과 방법의 획일화로 잘못 시행됐다" 며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직접 운영하는 협약학교(Charter School)의 신설을 주장했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실험적으로 도입돼 현재 33개주 2천여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협약학교는 공립이면서도 학부모.지역사회가 교과과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부장은 "예술고와 음악고 등 특기적성고의 신설도 대폭 확대,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자립형 사립고와 자율학교 등으로 학교 형태를 다양화할 것을 제안했다.

숙명여대 송지창 교수는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한 선지원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동일 학군 내에서 진학희망 학교를 5지망까지 받아 1지망부터 추첨, 학교별 경쟁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교과과정 개편.교사의 질 향상〓다양한 학교 형태의 핵심은 교과과정의 자율성이다. 현대창의성연구소 임선하 소장은 "기존 국가주도형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많은 교과를 획일적으로 강요한다" 고 비판했다. 모든 사람에게 서로 다른 창의성이 존재하는데 현행 제도는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하도록 강요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교과 수와 교과별 항목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교수들의 전공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한양대 정진곤 교수는 "교원을 배출하는 사범대부터 중.고교 학생들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 그에 맞는 지도방안을 중점 연구하는 등 교사 양성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고 말했다. 교직발전 종합대책 역시 처우개선이나 사기진작뿐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재정투자 확대〓교육개혁에는 투자증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997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공교육비는 7.4%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학부모가 부담하는 공교육비(수업료 등)를 제하면 순수 정부 부담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4.8%) 이하다. 숙명여대 송기창 교수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교육투자에 포함시키는 관행은 교육불평등을 방치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선진국이 GDP의 5%에 육박하는 교육투자를 20~30년에 걸쳐 계속한 반면 우리는 90년 2.97%, 94년 3.29%에 머물다 90년대 말에야 4%대로 올라섰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우천식 박사는 "중.고교생 1인당 공교육비의 경우 OECD국가 평균의 67%에 불과하다" 며 "중앙정부의 재정압박이 투자확대의 걸림돌이라면 지방자치단체로 교육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팀장=박종권 차장

▶강홍준 ·이후남 ·구희령 기자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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