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 보다 힘없어 수모… 강해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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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금 중국에선 미국 정찰기가 불시착한 하이난다오(海南島)를 진원지로 강해지자는 자강(自强)운동이 일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제국주의자 미국' 에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운동의 최일선엔 하이난다오의 대학생들이 있다. 하이난대학 역사학과 두제(杜杰.21)군은 7일 하이난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리 영토를 마음껏 넘봐도 우린 막기에만 급급하다" 고 울분을 터뜨린 뒤 "이는 우리 힘이 부족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杜군은 이어 "우리 해방군의 전투력이 미군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고 말하고 "이를 극복하는 길은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해 높은 과학적 수준을 달성하는 길뿐" 이라고 다짐했다.

杜군의 호소는 대학가를 파고들었다. 하이난대학에서는 벌써부터 학생회를 중심으로 '연토회(硏討會.학술 동아리)짜기' '도서관 사랑하기' '책 한권 더 읽기' 운동이 일고 있다.

하이난 사범대학도 이 운동에 동참할 예정이다. 사범대 학생회 관계자는 9일 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대학도 학습 열기를 높이는 운동을 전개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런 운동은 비단 하이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돼야 할 운동" 이라고 규정한 뒤 "다른 성(省)내 몇몇 대학으로부터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고 전했다.

학생들의 움직임에 정부도 즉각 호응했다. 하이난성 최고지도자인 두칭린(杜靑林)성위원회 서기는 8일 미 정찰기가 불시착한 링수이(陵水)부근의 한 마을을 방문해 "농촌 간부들의 기본소질을 제고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 고 촉구했다.

杜서기는 "농촌에서부터 과학적 생산과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나라 전체가 잘 살 수 있다" 고 말하고 "이렇게 되면 어떤 나라도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재계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이난성 총상회 및 하이커우(海口)시 총상회 관계자는 "강해지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고 말하고 "상회를 중심으로 생산성 제고, 거래방식의 선진화, 투명 경영 등 경영 혁신운동을 펴나가겠다" 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서 1960년대 문혁(文革)식의 획일주의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이커우시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미국측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괴로움을 당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아는 법이다.

중국인들은 과거 오랫동안 당과 정부에 감시당해왔기 때문에 '외국에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있다' 는 사실을 더 못견뎌하는 것 같았다. 지금 하이난에서 일기 시작한 자강운동이 이런 불쾌감을 성공적으로 승화한 시민운동으로 중국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중국 전투기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하이커우〓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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