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 개헌론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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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헌론으로 정가가 시끄럽다. 여당 어디선가 불을 지피고 야당 일각이 들썩거리고 있다. 그것이 정국개편의 태풍이 될지, 찻잔 속의 소용돌이에 불과할는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고 있다.

*** 여권의 政局흔들기 작전

개헌론은 한마디로 '이회창(李會昌)흔들기' 이자 '반DJ정서 희석작전' 이다.

개헌론을 둘러싸고 한쪽에서는 동서화합과 단임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면 다른 쪽은 지금 경제위기가 오고 있는데 개헌논의 한답시고 정계개편음모나 꾸밀 때냐고 맞선다.

모두 그럴싸하다. 그러나 지금의 개헌론 중엔 순수한 이론적인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밑바닥에 이회창 지지 또는 반대를 복선으로 깔고 있다.

집권당은 지난 대선에서 1천만표를 얻은 이회창 총재에 맞설만한 후보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론으로 판을 한번 흔들어 보자는 작전이다.

설령 개헌이 안되더라도 그 와중에 이회창 총재의 힘을 분산시키거나 흠을 낼 수 있으면 좋고 만약 이를 기화로 정계개편 움직임이라도 일어나면 더욱 근사할 것이다.

최근 DJ정권의 독선으로 반DJ정서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이런 정치적 계략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헌론의 음모적 속셈 때문에 민주당은 당당하게 개헌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돈다. 당장 당론으로 밀어붙이자니 뒷심이 달린다. 한나라당 내의 개헌파도 목청을 높이고 있긴 하지만 굳이 탈당이라든가, 신당추진과 같은 모험을 할 생각까지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당내의 더 많은 중진들은 이틈에 입지강화를 노린다. 李총재를 두고 "내년엔 왕(王)이 될것" 이라는 아첨파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러니 김대중 대통령도 이 문제엔 일절 언급하려 하지 않는 것이고 당 대표도 개헌론을 진정시키려 한다.

더군다나 자천타천으로 나서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후보감들은 도토리 키재기다. 동교동계(한화갑)또는 동교동계 신구파의 후원을 받는 후보(김중권.이인제), 독자적인 개혁후보들(김근태.노무현)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이인제(李仁濟)씨가 앞섰다고 하지만 어떤 경쟁자의 말처럼 "그가 먼저 나섰기 때문" 이다.

그에 대한 호남지지표는 李씨 개인에 대한 지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특히 중부-수도권에서 누가 더 표를 모을지는 미지수다.

어떤 이는 호남+충청+강원 연대를 들고 나온다. 3개지역 유권자를 합친 숫자가 영남권과 비슷(총유권자의 28%)하니 해볼 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도식적인 탁상공론이다. 호남-충청연대를 가능케 했던 DJ-JP와 같은 지역맹주가 강원도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개헌이 돼서 동교동계 대통령후보+타지역 부통령후보가 된다고 지역감정 대결이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타지역 대통령후보+동교동계 부통령후보 카드는 좀 복잡하긴 하겠지만 대동소이하다.

이런 조합엔 역(逆)DJP연합도 가능하다. JP는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하고 킹메이커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가 한발 물러선 것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발판이 와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은 DJ와의 공조유지가 필수적이다. 충청권을 확보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개헌도 안되고, 민주당에 마땅한 후보가 없으면 공동여당의 추대도 노려볼는지 모른다(내각제포기, DJP공조파기 등 수없이 말을 바꾼 그가 대통령에 나서겠다고 말을 바꾸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의 '70세 청춘론' 은 무얼 의미하겠는가).

*** 의미심장한 '70세 청춘론'

이회창파(한나라당이 아니라)가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결사반대하는 한 개헌론은 결국 잠적하고 말 것이다. 개헌론이 정국돌파용의 꼼수로 전락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개헌이 정략적이 아니었던 때도 없었다.

다만 개헌론을 잠재운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개헌론이 정국 흔들기용 수단이듯 여당의 대선후보 결정까지 어떤 책략들이 더 동원될지 모른다.

이회창파가 매달리고 있는 반DJ정서가 강고하면 할수록 여권의 책략 역시 복잡하고 강해질 수밖에 없다. 무리수가 동원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럼에도 이회창파는 그저 반DJ정서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는게 문제다. 반DJ감정이란 부정적 정서가 여전히 대권 전략의 최대변수가 되고 있는 상황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김영배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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