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동북아 신냉전 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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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군용기 충돌로 빚어진 미.중 외교 갈등이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처음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미국이 거듭 '유감' 을 표시하는 등 자세를 낮추고 중국도 이를 '사실상의 사과' 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상황 전개에 따라선 동북아 전체를 긴장 상태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조기 수습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건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의 중국문제 전문가 베이츠 길은 이번 사건이 관련 당사자들에게 경종(警鐘)을 울렸다고 지적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양국은 사소한 사건으로도 언제든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라는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 이란 현재 미국 정부 내에 팽배해 있는 반(反)중국 분위기를 가리킨다.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 로 인식하고 가급적 포용하려고 했던 클린턴 행정부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또는 주적(主敵)으로 상정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와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문제로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이론적 근거는 소위 '중국 위협론' 이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매년 10% 가까운 놀라운 경제성장을 계속해 2040년이면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바탕으로 군비증강에 주력해 올해까지 국방비 증가율이 13년 연속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자신의 패권적(覇權的) 지위를 위협할 강력한 도전자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은 '핵심적 지지세력' 일본과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 목소리를 내려다 미국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난 뒤 미국의 힘에 편승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96년 미.일공동선언, 97년 신(新)미.일방위협력지침이 좋은 예다. 전역미사일방위(TMD)체제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부시 외교.안보 팀엔 친일(親日) 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포진, 앞으로 미.일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가급적 미국과 적대관계를 피하려는 입장이다. 우선 미국과 경제교류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베이징(北京)올림픽 개최도 미국의 지지가 필요하다.

미국과 섣불리 군비경쟁을 벌였다간 소련처럼 된다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 미.일.대만 군사동맹 결성, 대만 독립 등 참기 힘든 압박을 가해오면 가만있지 않을 태세다. 같은 처지인 러시아와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모색 중이다.

동북아에 갑자기 형성되기 시작한 차가운 기운이 한반도를 덮고 있다. 자칫하면 남북한은 미.중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돼 새로운 양극(兩極)구조에 흡수돼버릴 수도 있다. 남북한 화해.협력으로 냉전구조를 자주적으로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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