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최양락의 '알까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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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웃기는 사람들 중에는 두 유형이 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사람과 기가 차서 허탈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 후자의 웃음은 물론 억지스럽고 민망한 경우다. 짜증나게 만들어 주므로 머무르는 정서가 희열보다 분노에 가깝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생산하는 웃음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웃도록 만들면 마음이 정화작용을 일으키지만 '이래도 안 웃을래' 하면서 시청자를 당혹하게 만드는 코미디는 고문이나 폭압에 가깝다.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와 공생을 시도한 시트콤이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요일 한낮에 편안하게 웃겨 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디지털시대의 코미디답게 제목이 '코미디 닷컴' (MBC)이다. 그 중에 아주 차분하고 진지한(?

) 꼭지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개그맨 최양락이 주도하는 '뉴 닷컴배 알까기 명인전' 이 그것이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는데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바둑대회를 패러디한 형식인데 게임은 그저 바둑알을 손으로 퉁겨 상대방의 알을 판 밖으로 밀어내면 이기는 내용이다.

유명한 바둑해설가의 독특한 발성을 흉내내면서 대국하는 자의 살아온 이력을 비튼다. 연출의 핵심은 최대한 엄숙한 출연자의 표정이다.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물론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해 출연자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점잖은 이미지의 대국자일수록 웃음의 강도가 크다).

코미디의 진정한 목표는 비틀거리는 세상을 조롱하는 것이다. 알까기는 판 밖으로 상대를 몰아내야만 승자가 되는 비인간적 구도를 야유한다. 자기가 벌이는 사건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바둑알 까기에만 몰두하는 '진지한 바보들' 을 해설자 최양락은 마음껏 주무른다. 이전에 무지한 독재자를 신랄하게 풍자했던 '네로 25시' 나 겉다르고 속다른 현대인의 이중성을 겨냥한 '도시의 사냥꾼' 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반성케 한 전력이 녹슬지 않았다.

교훈은 무언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에게 면박을 주고 고통을 주어서 억지웃음을 만들고자 하는 코미디 제작진에게 '알까기' 의 성공사례는 참고서가 될 만하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이라는데 정말로 흔들리지 않고(불혹) 세상살이의 이치를 웃음을 통해 깨닫도록 도와 주는 코미디언으로 오래도록 남아주길 기대한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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