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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서울] 보행자 홀대하는 한강 다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한강다리에는 보행자를 위한 배려가 별로 없다.한강을 감상할 수 있는 다리 난간의 전망대는 고사하고,좁은 보행로와 중간 중간 설치된 장애물들이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도로 곳곳의 인도(人道)와 다리 사이의 연결이 좋지 않아 한강을 걸어서 찾기도 쉽지 않다.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강다리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3일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호텔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한강을 지날 때였다. 탑승한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한강의 규모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와우, 센강의 세배는 되겠군요" "서울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다니…" 등등. 한마디로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한번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리 위에는 차만 달리고 보행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 온 제인(34.여.회사원)은 "이렇게 멋진 강의 다리 위에 산책로나 휴게 시설이 없다는 게 아쉽다" 고 말했다. 또 뒷자리에 있던 프랑스인 사비에(28.회사원)도 "센강의 다리와 달리 한강다리는 다리 위에서 점심을 먹는 일이 불가능해 보인다" 고 소감을 말했다.

한강에 설치된 다리(철도교 제외)는 모두 17개. 대부분의 다리 양쪽에 보행로가 마련돼 있긴 하다.

그러나 현장을 가보면 보행로는 말 뿐임을 알 수 있다.

한강다리는 진입과 진출이 각종 램프와 대로로 연결돼 있어 도보를 통한 접근 자체가 어려운 데다, 다리 위 보행로 폭도 1~1.5m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지나갈 때 차지하는 폭이 0.75m임을 감안하면 어깨를 옆으로 돌려야만 두 사람의 교차통행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각종 보수공사가 있기라도 하면 통행하기 어렵고, 바리케이드를 세워놓은 검문소 등은 보행로의 역할마저 무색케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은 강폭이 넓어 보행자 수요가 적다" 고 설명했다. 또 생활권이 다른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다 보니 교통량이 많은 데다 소음과 매연 문제 등이 겹쳐 보행로를 활성화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 대책=경제성과 효율성 등을 감안할 때 기존 한강다리에 보행 시설을 확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 한강에 있는 작은 섬들을 보행자 다리로 연결해 주거나 교통량이 줄어든 다리들을 보행자 다리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단순 통행 기능보다 전망대나 벤치 등 휴게시설을 갖춰 시민들이 친근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강다리에 야경 감상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면 금상첨화일 것" 이라고 지적한다.

내년 3월말 한강에 첫 보행자 다리가 생긴다. 현재 공원화 작업이 진행 중인 선유도와 영등포구 양평동(양화지구)을 잇는 4백69m 길이의 보행전용 다리가 그것이다.

이 다리는 프랑스 건축가 루디 리시오티가 설계를 맡았다. 진입부에서 선유도에 닿기까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먼저 다리에 들어서는 진입부에 장애자용 엘리베이터를 설치, 누구나 손쉽게 한강을 즐기도록 한다. 또 기존 보도육교 부분에는 투명 방음벽을 터널처럼 세우고 담쟁이 덩굴을 위에 올려 숲속을 거니는 느낌을 살린다.

신설되는 육교를 거쳐 '무지개 다리' 로 불리는 아치교 부분을 지나면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난간쪽에는 간접조명을, 다리 위에는 가로등을 세워 분위기를 돋구고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도 설치한다. 선유도 보행자 다리의 연간 이용객은 87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서울시는 천호대교 확장으로 인해 최근 교통량이 급격히 줄어든 광진교의 보행로를 확장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먼저 광진교를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한 다음, 2003년 이후에 2개 차선을 보행로로 활용할 방침" 이라며 "주변의 아차산과 선사유적지, 생태공원 등과 연계하면 보행다리 이용자는 급격히 증가할 것" 이라고 밝혔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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