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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일억총무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 뉘우치고 슬퍼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 이 다소 부족하다. 세계, 특히 가까운 이웃나라 중에 친구가 없을 뿐더러 친구를 만드는 방법도 모른다.

이웃나라들의 비난에 이해를 표시하지 않고 '신중함' 으로 일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후(戰後) 4반세기가 지나도록 일본에는 실질적인 외교정책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침략과 비행(非行)을 반성하지 않고 유야무야하려 한 결과 이웃들과 신뢰를 쌓는 일에 불필요하게 곤란을 겪게 됐다. "

1974년부터 8년간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83)박사의 회고록 내용이다. 회고록 중 '일본의 제한된 역할' 이라는 제목을 단 대목에서 슈미트 전 총리는 "일본은 일제시대에 특히 깊어진 이웃나라들과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일본인에게 '죄의식' 이 결여돼 있기 때문" 이라고 진단했다.

독일 통일의 준비작업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총리 사임 후 고급주간지 '디 자이트' 의 발행인으로 활약 중이다.

재작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강연하면서 "동북아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중.일 관계는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인정.사과하는가 여부에 따라 양국 관계의 방향이 결정될 것"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하자 남북한.중국이 반발하고 나서 외교분쟁으로 번졌다.

교과서 내용 중 한반도 부분은 제쳐놓더라도 '일본의 (대동아전쟁)서전 승리는 동남아 및 인도의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의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일본의 전쟁목적은… 아시아를 구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 등의 대목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극치다. 1943년 11월 일제가 만주국.중국왕조.필리핀.태국.미얀마.인도의 꼭두각시들을 소집해 '대동아회의' 란 것을 열고 채택한 '대동아공동선언' 의 재판(再版)임을 교과서 집필자들을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45년 패전 직후 당시 일본총리(히가시구니노미야)는 '온국민이 모두 참회하는 것이 우리나라 재건의 제일보다' 는 '일억총참회(一億總懺悔)' 론(論)을 제창했다. 침략전쟁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얼버무린 것으로 유명한 말이다. 이제 일본은 '일억총무죄(無罪)' 를 주장하기 시작했는가.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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