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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라크·아프간선 1만2000대 로봇 활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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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08면

전 세계에서 26억 달러의 역대 최고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 ‘아바타’는 로봇전 장면이 압권이다. 한국에서도 1300만 명이 본 ‘아바타’에선 정규군이 아니라 민간 용병이 싸운다. 우리가 아는 전쟁 방식으로도 싸우지 않는다.

브루킹스연구소 석학 피터 싱어가 말하는 전쟁의 미래

하지만 영화 속의 미래전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선 로봇과 용병이 전쟁의 주역을 맡고 있다. 지난해 말 아프간에선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 폭탄테러로 요원 7명이 숨졌다. 이 중 2명은 민간 전쟁 대행 회사 블랙워터 직원이었다. 미군의 보복 공격은 무인 로봇기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만 무인기 공습이 13차례 이어졌다. 한 번 출격에 8대 이상의 무인기가 동원돼 적군 50명 이상을 죽였다.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피터 싱어(35·사진) 박사를 만났다. 그는 29세에 브루킹스 역사상 최연소 책임연구원이 된 석학이다. 특히 미래전의 최고 전문가다. 지난해 『전쟁에 뛰어든 로봇(Wired for War)』을 펴내 로봇과 새로운 군사기술이 21세기 전쟁에 미치는 영향과 윤리 문제를 파헤쳤다. TV 드라마 ‘웨스트 윙’과 미래 전쟁영화에 대해 조언도 해 주고 있다. 그의 연구실 책상 위엔 서너 살 된 아들과 아내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다음은 싱어 박사와 일문일답 요지.

『전쟁에 뛰어든 로봇(Wired for War)』

-박사님은 ‘미래전은 로봇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제쯤 본격화될까.
“우리는 이미 그런 현상을 보고 있다. 2001년 아프간전쟁을 시작할 무렵엔 로봇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라크와 아프간 하늘에 7000여 대의 무인전투기가 떠 있다. 미 공군은 지난해 전투기·폭격기 조종사보다 더 많은 수의 무인전투기 조종사를 훈련시켰다. 지상로봇은 22가지 종류, 1만2000대 이상으로 늘었다. 해군의 5대 우선순위엔 무인 시스템을 더 많이 개발·구입하는 게 포함됐다. 이젠 로봇을 전쟁에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임무를 주는 게 좋은지 판단하는 게 중요해졌다.”

-전쟁 로봇에 어떤 일을 맡겨야 하나.
“군에서도 사람의 본능이나 감각, 인간 관계에 의존하는 문제가 있다. 굉장히 유명한 로봇 과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로봇이 이발사의 일보다 내 일을 더 빨리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엔 인간적 요소가 있다. 예술적 감각도 있어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면도칼로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신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로봇이 소아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을 제외한 43개국에서 군사용 로봇이 쓰인다. 한국과 일본, 중국도 포함된다.”

-기술적으로 미국보다 더 발달한 나라가 있나.
“역사상 군사기술을 처음 개발한 나라가 최종 승자는 아니었다. 튀르크는 화약을 처음 사용했지만 군사용으로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탱크를 발명했지만 독일이 더 잘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IBM은 한때 컴퓨터 리더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이 현재 로봇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최고의 로봇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민간 로봇 시스템에선 일본이나 한국이 더 우수하다.”

-언제, 어디서 전쟁 로봇이 효과적인가.
“군인의 목숨을 살리고 폭발물을 찾는 데 효과적이다. 이라크에선 로봇이 폭발물을 찾으면 함께 터진다. 이라크 현지 사령관은 ‘로봇을 잃는 것은 유감이지만 어느 어머니에게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쓰지 않아도 돼 기쁘다’고 하더라. 사령관의 말을 빌리면 무인전투기 프레데터가 가장 중요하다. 대전차 미사일을 싣고 목표물을 타격한다. 군인들이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로봇도 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군 70%가 급조된 폭발물로 피해를 봤기 때문에 개발됐다. 앞으론 로봇이 작전 수행뿐 아니라 작전을 짜는 데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전쟁은 결국 군사기술에 달려 있다는 얘기인가.
“기술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2004년 미국은 이라크의 알카에다 지도자인 알자르카이를 찾고 있었다. 그는 23명의 유엔 직원이 살해된 폭탄테러를 조종했다. 미 국무부는 체포 보상금을 2500만 달러(약 280억원)나 내걸었다. 오사마 빈 라덴에게 걸린 현상금과 같은 금액이다. 요르단인에게서 정보가 왔다. 알자르카이가 어떤 종교 지도자와 자주 만나 상의한다는 것이었다. 그 종교 지도자가 가는 곳마다 무인정찰기를 붙였더니 몇 주 후 무인기가 두 사람을 확인하고 폭격했다. 사람 정보와 로봇 정보가 엉켜 있다. 하지만 알자르카이를 폭사시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다음 해 이라크에선 더 큰 규모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기술은 강력한 수단이지만 해결사는 아니다.”

-아프간과 이라크전에서 용병의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이라크에서 용병은 19만 명인데 미군과 연합군을 모두 합친 18만 명보다 많다. 아프간엔 10만 명의 용병이 있는데 전체 외국군 숫자와 비슷하다. 부시 전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willing)을 요구했는데 결과는 청구서의 연합(coalition of billing)이 돼 버렸다.”

-용병이 왜 이렇게 많아졌나.
“의회 승인을 받지 않고도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자녀를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느냐.”

-용병과 로봇이 주도하는 미래전을 어떻게 보나.
“걱정과 우려의 측면이 있다. 지난 10년간 전쟁 방식의 변화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전쟁터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것들이 모두 등장했다. 이미 전쟁의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군 무인전투기 프레데터가 뜨면 아프간 반군이 민간인 사이에 숨는 전술이 있다. 그래서 프레데터가 민간인을 폭격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용병이 전쟁터에서 민간인 살해 혐의를 받고 비난받는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과 용병이 죄의식 없이 민간인을 살상하는 데 대한 대책은.
“로봇 시스템은 계속 성장하는 글로벌 테크놀로지다. 하지만 현재로선 규제의 근거가 없다. 이 모든 것을 단속하고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네바협약은 레코드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을 때 만들어진 옛날 규정이다. 디지털 음악을 듣는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 국가 간에 전쟁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협약이 전쟁 대행 회사와 로봇이 싸우는 시대엔 맞지 않는다. 어떤 로봇이 무장돼야 하고, 어떤 조직이 로봇을 소유할 수 없는지에 대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이것을 공상과학 정도로 보고 있다. 원자폭탄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구체적으론 어떤 규제를 할 수 있나.
“로봇이 무장세력과 민간인을 어떻게 구분할지, 로봇에 교전수칙이나 전쟁법규를 어떻게 입력할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지 하는 것 같은 로봇 윤리 문제다.”

-올해도 폭탄 테러가 잇따르고 있는데.
“테러리스트 개인을 잡는 데 중점을 둘 게 아니라 테러 세력들이 활동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리더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12세 소년이 하마스에 가입해 테러리스트가 되겠다고 꿈꾸는 현실을 막지 못하고 있다. 1900년대 유럽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국민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테러 다발 국가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인간은 전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인간은 전쟁과 이상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전쟁이 죄라고 한다. 우리는 전쟁이 파괴이며 고귀한 생명과 자원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전쟁이 있었다. 어느 도시에 가든 전쟁영웅 동상이 있다. 내 책은 로봇이 어떻게 전쟁에 쓰였는지, 기술이 어떻게 전쟁에 관여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전쟁에 뛰어든 것은 로봇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모든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은 발명하기를 좋아하지만 발명은 대부분 전쟁을 위한 것이란 게 나의 무서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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