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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와 GM, 1등의 적은 1등 자신이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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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24면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5일 일본 도요타시 본사에서 열린 ‘청문회 보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역사적으로 강국의 몰락은 외침보다는 내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강자일수록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파괴적이다. 실패학으로 유명한 잭디시 세스 미국 에머리대 교수는 “성공기업이 쇠퇴하는 원인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말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 중에 생겨나는데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① 세계적 자동차기업은 왜 무너졌는가

이러한 내부 요인은 ▶현실 부정 ▶오만 ▶타성 ▶핵심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눈앞의 경쟁만 보는 근시안 ▶규모에 대한 집착 ▶조직원의 사일로(silo·곡식을 저장하는 원통형 창고를 뜻하지만 경영학에서는 조직 안에 성이나 담을 쌓고 다른 부서와 협력하고 소통하기를 꺼리는 부서를 비유적으로 표현) 의식으로 요약된다.
한때 세계자동차 산업의 선두권을 달렸던 GM·도요타·미쓰비시가 경험한 뼈아픈 실패도 내부 요인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소형차 시장의 급성장을 가져오면서 변방의 일본을 세계자동차 시장의 중심부로 진입시켰다. 도요타는 극한적 원가절감을 추구하는 ‘가이젠(改善)’신화를 바탕으로 2008년 부동의 1위였던 GM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에 올랐다.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도요타는 채 3년이 되지 못해 급제동이 걸렸다. 최근 불거진 리콜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1937년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리콜은 차량 품질에 대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서 회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은폐해 왔다는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도요타 성공 신화의 한 축이었던 ‘가이젠’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덫이 돼버렸다. 도요타는 90년대부터 세계 1위를 목표로 해외 생산을 급속히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2004년 672만 대이던 판매대수는 2008년 891만 대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양적 팽창’을 ‘질적 안정’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문제가 누적됐다. 원가절감을 위해 과거 일본기업에서 조달하던 부품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부품의 공통사용 비율이 높아지면서 일부 부품 불량이 전 차종 불량으로 확산할 수 있는 위험성은 더욱 커졌다.

해외공장을 관리할 직원이 부족해지자 간부를 파견하던 곳에 풋내기를 내보내는 사례도 생겼다. 도요타 특유의 치밀한 관리에도 허점이 생긴 것이다. 이는 결국 품질 문제로 비화됐다. 1000만 대를 웃도는 이번 리콜 대상 차종 대부분이 2004년 이후 생산됐다. 5년 이상 누적된 문제가 이제야 수면으로 떠올랐다는 걸 보여준다.

글로벌 양산 체제 구축과 안전-품질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세계 1위를 추구했던 도요타는 자신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규모에 대한 집착’이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패착이 되는 역설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도요타 특유의 폐쇄적인 기업문화는 인화단결과 내부혁신에서는 강점을 발휘했지만, 외부 고객의 불만을 경청하고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책임지는 위기관리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도요타에 1위를 빼앗긴 GM도 내부 요인에 의해 쇠락했다. 1920년대부터 세계자동차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GM은 전성기 때 미국 시장 점유율이 57%에 달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GM은 그러나 2009년 6월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GM 몰락의 핵심 원인은 ‘승자의 오만’이었다. GM은 세계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영원히 정상을 고수할 것으로 착각했다. 기술개발·품질혁신·원가절감 등 기업 본연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커지는 내부갈등을 방만한 경영과 무분별한 사내복지의 형태로 봉합해 왔다. GM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대호황기였던 50년대를 거치면서 퇴직 후의 생활과 의료까지 보장하는 복지제도의 골격을 완성했다. 이후 GM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아니라 ‘제너러스 모터스(Generous Motors)’라고 불릴 정도로 종업원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다. 당시 성장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 1위였던 GM은 이런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900년대 초 50세 전후에서 20세기 후반 77세로 늘었다. 퇴직 종업원의 생존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금지급액은 급증했고,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령화의 유탄을 맞은 GM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 돼버렸고, 18만 명의 종업원들은 자신이 아니라 퇴직자의 연금을 위해 일하는 꼴이 됐다. 2000년대 초반 회사가 부담하는 의료보험료와 연금 비용은 자동차 한 대당 220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고, 판매 촉진을 위해 할인 판매를 감수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GM의 몰락은 이러한 과다한 ‘유산 비용(Legacy Cost)’에서 비롯됐다. 호황기에 얻어지는 과실을 미래투자에 돌리기보다는 현재에 나눠 먹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했고, 이는 결국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부담이 됐다.

객관적 시각을 잃을 때도 위기는 찾아온다. 1990년대 SUV시장의 팽창에 힘입어 급부상했던 미쓰비시 자동차는 호시절의 환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바라보는 ‘현실부정’ 증세로 자멸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2000년 6월 제품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사실이 발각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 미쓰비시-푸조가 생산한 트럭의 클러치 결함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실을 숨기려다 경영진 7명이 구속됐다. 이후 소비자 신뢰에 치명타를 입고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결국 독자생존을 포기하고 2009년 프랑스 푸조에 인수됐다.

20세기 후반까지 50년간 세계 민간항공기 시장의 1위를 지켜온 보잉은 2001년 수주 기준으로 에어버스에 뒤처지는 위기를 맞았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신임 최고경영자(CEO) 해리 스톤사이퍼는 ‘보잉의 적은 바로 보잉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근본적 혁신을 통해 경쟁력 회복의 기반을 닦았다.

1등 기업인 도요타, GM 역시 진정한 적은 경쟁기업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국내기업도 LCD·반도체·TV·조선·휴대전화 등의 분야에서 속속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있다. 정상으로 발돋움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지만, 앞으로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성공기업의 ‘자기파괴’ 증세에 빠지지 말고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내부혁신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도요타·GM·미쓰비시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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