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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 피살 사건 … 40년 지나도 진실은 오리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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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생전의 정인숙씨와 그의 아들.

1970년 3월 17일 밤, 서울 강변도로(지금의 강변북로)의 절두산 근처에서 26세 여인이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운전석에 있던 그녀의 오빠도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수사 결과 오빠가 범인이며, 동생 정인숙이 요정에 나가면서 많은 남자와 사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아 기르는 등 사생활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던 오빠가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총기 소지가 금지된 한국에서 권총이 사용됐다는 점뿐만 아니라 정인숙의 수첩에 당시의 고위급 정치인과 재계 인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야당 인사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의 수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전 중앙정보부장의 이름까지도 수첩에 적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에게는 스캔들이 따라다닌다. 클레오파트라에서부터 메릴린 먼로에 이르기까지 미녀와 정치인 사이에서의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인숙 사건처럼 평범한 한 여성에 의해 일국의 최고 권력자들이 한꺼번에 거론된 예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일까? 이 사건은 단순 살해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총기 사용이 가능했는지, 범인인 오빠가 왜 총상을 입었는지 등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미제(未濟) 사건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 사건도 20여 년이 지나면서 다시 세간의 도마에 올랐다. 정인숙씨의 오빠가 출소하면서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정인숙씨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하기도 했다. 이후 지상파 방송에서 잇따라 정인숙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2009년 3월 7일, 자신의 억울한 상황에 대해 진술서를 남긴 한 여배우가 자살한 이후 정인숙 사건이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진술서에는 한국 사회에서 권력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적혀 있었고, 검색엔진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인터넷에 확산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진술서에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정인숙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1970년으로부터 40년이 지나는 동안 여배우와 권력자 또는 재벌가를 둘러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소문’이었고, ‘진실’이 되지 못했다. 민주화가 되면서 요정정치는 사라졌지만, 정치권력과 금권에 의한 성의 상품화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소문들이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