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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독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통령과 독대(獨對)했다는 사실만으로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청와대 독대' 는 흔한 일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다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석자 없이 대통령과 면대면(面對面)으로 만난다는 것은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나 신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대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을 법하다. 독대의 기회를 잡은 '행운아' 들 가운데는 '필생의 영광' 이라며 감격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조선조 17대 임금인 효종과 독대한 우암 송시열은 그 감회를 잊을 수 없어 『독대설화(獨對說話)』라는 책까지 남겼다. 1659년 효종은 이조판서 송시열을 희정당으로 불러 단 둘이 만났다. 법도를 깬 파격이었다.

효종은 북벌(北伐)계획을 털어놓고 자신의 병이 깊으니 후대의 왕을 도와 북벌을 성취해 달라고 부탁한다. 효종이 승하한 뒤 우암은 벼슬까지 그만두고 효종의 무덤인 영릉이 있는 여주로 내려가 선왕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그 정도로 우암에게 효종과의 독대 경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조선의 법도는 임금과 신하의 독대를 엄격히 금했다. 임금이 왕비와 후궁 이외의 사람을 만날 때는 반드시 승지와 사관이 입직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나라를 매개로 한 공적관계지 개인간의 사적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조 5백년을 통해 독대는 효종의 송시열 독대와 1717년 숙종의 이이명 독대 등 손꼽을 정도다. 노론의 대신이었던 좌의정 이이명과의 독대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상규를 벗어났다는 상소가 줄을 이었고, 이로 인해 이이명 자신도 피해를 봤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번에 새로 장관이 된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독대를 하고 있다는 보도다(본지 4월 3일자 5면). 배석자 없이 30~40분씩 만나 일종의 면접시험을 치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신임장관들의 솔직한 얘기를 듣고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취지는 좋지만 독대에서 오간 대화가 기록으로 남지 않으니 문제다. 그래서 청와대 독대가 있고 나면 늘 뒷말이 무성하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는 나라에서는 대통령 귀에 대고 누가 무슨 얘기를 속삭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과 독대하는 사람이 혀를 잘못 놀려 잘못된 정보를 대통령 머리에 심어준다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 환란이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기록이 없으니 확인할 수도, 따질 수도 없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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