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 흥행 돌풍 계속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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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초반 흥행이 심상찮다. 지난달 31일 선보인 '친구' 는 개봉 주말 관객수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의 기록(표 참조)을 제치고 지난 2일까지 27만명(서울 기준.전국 72만명)을 동원했다.

1970~90년대를 무대로 각기 다른 길을 걷는 고교 동창생 네명의 행적을 훑는 '친구' 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랜만에 찾아온 남성영화라는 점. '순애보' 를 필두로 최근의 '선물' 까지 올 극장가를 줄줄이 장식했던 멜로영화와 크게 다르다.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라는 두 주인공을 통해 뒷골목 남성들의 우정.갈등을 묘사한 상투성이 눈에 거슬리나, 시종 일관 작품을 견실하게 이끌어가는 치밀한 드라마와 안정된 영상이 돋보인다.

특히 '제2의 송강호' 란 평까지 듣는 유오성의 빼어난 연기와 '성격파 배우' 로 변신에 성공한 장동건의 열연이 영화 전체에 독특한 힘을 불어넣고 있다. 여기에 '광시곡' '천사몽' 등 한국형 대작 영화가 잇따라 실망을 안겨준 가운데 개봉된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요 코드로 등장한 복고풍 분위기도 영화의 흥행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멜로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가 80년대 대학가를 아름답게 재현했듯, '친구' 는 검정 교복을 입었던 30대 중.후반마저 '추억의 세대' 로 끌어내렸다.

그렇다면 '친구' 가 '쉬리' (1999년)와 '공동경비구역 JSA' 를 잇는 화제작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많은 영화전문가들은 일단 회의적이다. 초반의 기세로 볼 때 흥행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쉬리' '…JSA' 처럼 서울 관객 2백만명 돌파는 힘겨울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욕설.폭력 장면 때문에 영화등급이 18세 이상으로 결정된 게 가장 큰 취약점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평상시 극장을 즐겨 찾지 않는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한국영화 관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고생이 볼 수 없어 한계가 분명하다" 고 말했다.

지나친 남성영화라는 점도 짐이 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여성 캐릭터가 살아 있는 '쉬리' '…JSA' 와 달리 '친구' 는 사나이의 의리.우정 등을 강조한 탓에 여성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뒷심이 달릴 수도 있다" 이라고 진단했다.

'친구' 의 또 다른 약점은 '쉬리' '…JSA' 를 떠받쳤던 남북화해 분위기 같은 뚜렷한 사회적 이슈가 없다는 것. 경제불황에 위축된 남성들이 사나이의 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으나 영화 자체의 장기 흥행을 보장할 만큼 내용.형식상의 새로움이 드물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좋아졌다는 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작품성.완성도만 갖추면 관객이 든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영화계를 짓누르고 있는 '대작 콤플렉스' 를 어느 정도 씻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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