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지성의 한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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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 이기준(李基俊)총장과 도쿄(東京)대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총장이 한 목소리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어제 있었던 도쿄대 졸업식에서 李총장은 "역사는 잊혀질 순 있어도 지워질 수는 없다" 면서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편견없는 이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스미 총장도 "역사적인 기억을 왜곡하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작은 자기만족은 얻을지 몰라도 미래에 대한 용기는 결코 전해받지 못한다" 고 강조했다.

서울대 총장이 도쿄대 졸업식에 초청받아 간 것 자체가 처음인 데다 양국 지성(知性)을 대표하는 두 대학총장이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상징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양국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나라 정상이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다짐한 게 불과 2년6개월 전이다. 그러나 고질병처럼 되풀이되는 '망언' 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당국의 무성의는 양국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돼 왔다. 게다가 꺼진 줄 알았던 역사교과서의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어차피 양국은 모든 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다. 단순히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공동개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한 양국간 진정한 우호와 협력, 선린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협력과 공존' '과거에 대한 책임' 을 강조한 두 대학총장의 연설은 뜻있는 양국 지식인들의 연대를 통한 과거사 극복이라는 하나의 해법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두 나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두 총장의 한 목소리가 양국 지식인간 연대를 통한 과거사 해결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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