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벤처 CEO 7인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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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여자가 사업을 한다?"

아직도 국내에선 여성 창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격려의 박수보다 걱정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앞선다.

가족과 어울릴 시간이 없어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갖는 것도 극복해야 할 현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자직원을 통솔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원은 1백30여명을 헤아린다. 현재 창업 준비를 하고 있는 준회원까지 더한다면 회원은 5백명으로 늘어난다. 여성벤처협회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벤처 CEO 7인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CEO로 자리매김하게 됐는지 뒷얘기를 들어봤다.

◇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짐〓여성으로는 드물게 건설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한국피엔알건설의 이혜경 대표. 창업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실감했다. "현장 감독도 직접 하십니까?" "접대도 하시는지요?" "이쪽 일은 좀 거친데요…. " 그가 만난 남성들은 한결같이 '어렵다' 는 얘기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업계에 특별한 연고도 없었던 그에게 무기가 된 것은 오랫동안 전 직장에서 쌓아온 관리 노하우. '나를 증명하는 것은 신용과 성실밖에 없다' 는 일념으로 버틴 결과 창업 3년만에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유무선 솔루션 개발업체인 우암닷컴(http://www.wooam.com)의 송혜자 대표는 "미혼이라는 이유로 거래처에서 '당신이 결혼하면 추진하던 일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 는 걱정 아닌 걱정을 들었다" 며 "대형 통신업체에 제품을 공급할 만큼 사업기반을 다지자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고 말했다.

물론 여성 CEO라는 '희소성' 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CEO들은 "여성기업이 투명하고 건실할 것이라는 기대 덕분에 거래처의 신뢰를 얻은 적도 있다" 고 입을 모은다.

비즈니스 상대라기보다는 이성으로 접근해오는 거래처 사람들도 없지 않다. "웬만한 직장여성이라면 이런 상황을 겪어봤을 것" 이라고 말하는 모 여성 CEO는 "서로 껄끄럽지 않게 거절하는 노하우가 없으면 안된다" 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여성 CEO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함으로써 CEO의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고 말했다.

◇ 술 잘 마시는 척할 때 많아〓원만한 인간관계와 폭넓은 네트워크, 그리고 능력과 성실성,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 CEO들은 갖춰야 할 것도 많다. 7년간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유아용 투약기 제조업체 에버베이비 유경순 대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아이를 낳는 등 많은 일을 스스로 해결해온 경험이 지금 CEO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 말한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해외생활 경험을 십분 살려 현재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기 사업을 하면서 술자리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한 여성 CEO는 "술을 잘 못하지만 불가피한 자리도 많았다" 며 "폭탄주 10잔을 마시고 졸도한 적도 있다" 고 말했다. 물론 이런 해프닝은 사업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줄어들게 마련이다.

"술을 잘 마시기보다는 분위기상 잘 마시는 척할 때가 많다" 고 털어놓은 이들이 더 많았다. 이나루닷컴 배희숙 대표는 "거래처 사람과는 주로 점심 시간을 활용한다" 면서 "어차피 안될 일이 술로 되는 경우는 없다" 고 말한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골프채를 3년간 손에서 놓았었다" 는 그는 "어쨌든 일보다 술.골프가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고 덧붙였다.

◇ 가정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여성 CEO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패션콘텐츠 제공업체인 파소나기 김아현 대표는 "주어진 시간을 밀도 높게 활용한다" 고 말한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파 브레인의 이은령 대표는 일반 직장생활과 교수생활을 거쳐 사업전선에 뛰어든 경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대표는 "여성벤처 CEO를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벤처 하모니' 를 이뤄야 한다" 고 말한다.

계측기.전자제품 관련 사업체인 이지디지탈 이영남 대표(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역시 시어머니와 남편을 '최고의 후원자' 로 꼽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남편이 아이들의 대화 상대가 돼주었다" 고 말하는 그는 "여성 CEO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남편의 외조" 라고 강조했다.

이은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자신감이 없으면 덤비지 말자.” -시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수익 창출 여부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자신감의 기본 요건.이나루 삼성정보교육원 배희숙 대표.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목표가 뚜렷해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혹시 잘못될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최상의 대책을 찾아내는 것. 이지디지털 이영남 대표

“도전정신!”-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는다.긍정적인 자세는 누구나 갖는 것은 아니다.도전정신은 긍정적인 자세에서 나온다.알파 브레인 이은령 대표

“준비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사업하는데 무엇이 필요한 지를 따져볼 것.그리고 그것을 준비할 것. 우암닷컴 송혜자 대표

“제로(제로)에서 시작할 수 있다.”-창업 지원제도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중요한 것은 자본금이 아니라 비전,그리고 실력. 베이비케어 유경순 대표

“전문가가 되자.”-자기 업종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것.전문성은 기술·영업 등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신뢰를 얻는 열쇠.파소나기 김아현 대표

“적극적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일이든,놀이든 적극적이 되라.사람과의 만남에도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한국피엔알건설 이혜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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