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개각] 재야 이태복씨 발탁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이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태복 노동일보 회장을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일단 노동계와의 관계개선에 목적이 있는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일부의 우려처럼 진보적인 노동정책을 구사하기 위해 그를 기용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근 들어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가 심각한 갈등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한국전력.국민은행 및 주택은행.대우자동차 노조에 대해 아주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구조조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완수해야 하는 金대통령은 노동계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게 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차와 같은 정리해고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고 춘투(春鬪)가 다가오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 입장에선 누구보다 노동계와 가깝고 노동계를 잘 아는 인물이 필요했을 것" 이라고 풀이했다.

李수석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정부의 노동과 복지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지난해 7월에는 정부의 금융구조조정 정책을 두고 "지주회사법에 의한 구조조정은 신(新)관치금융을 낳고 금융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아 금융 총파업을 촉발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말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경기도 고양시 일산 농성장을 방문해 집행부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노동일보 칼럼에서 의약분업을 '실패한 정책' 으로 규정했다. 그는 당시 '지긋지긋한 정치판' 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의약분업은 분명히 실패한 정책이다. 솔직하게 '시행해 보니 준비가 너무 안됐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유보하고 각계의 의견을 모아 다시 결정하겠다' 고 해야 한다" 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국민의 정부에 대해 별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 왔다. 金대통령은 그런 李수석을 통해 일단 노동계를 무마하고 그를 통해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을 마찰없이 완수하는 절차를 밟으려는 것 같다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李수석의 기용은 단순히 노동계 무마 차원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장기적으론 그가 갖고 있는 진보적 성향이 어떤 형태로든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金대통령이 그같은 재계의 우려를 얼마나 풀어주며 노동계의 협조를 구해나갈지 관심이다.

신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