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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법 파업·시위, 피해 입힌 만큼 돈으로 물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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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불법 파업과 시위의 악습을 끊는 확실한 방법은 돈으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물어 내도록 하면 돈 걱정 때문에라도 불법 행위는 위축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불법 파업이나 시위에 대한 손배소 판결에서 너무 온정적 경향을 띤 것으로 분석돼 불법 근절이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본지가 2005∼2009년 주요 파업 사건 관련 손배소송 30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 배상액이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실질적 피해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0%는 선고된 배상액이 청구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불법 파업을 한 노조를 상대로 업주들이 모두 101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지만 겨우 2억여원이 선고된 경우도 있었다. 피해 산정 방식에 차이가 있겠지만 법원이 ‘노조는 사회적 약자’라는 과거의 인식에 갇혀 배려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소송 30건 중 1년 안에 최종 결론이 내려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5년 넘게 질질 끈 재판이 25%에 달했다니 법원의 명백한 직무유기(職務遺棄)다.

선진국에선 합법적인 파업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불법으로 인한 시민 피해는 금전적으로 되갚아야 한다는 불문율(不文律)이 정착돼 있다. 2005년 12월 미국 뉴욕의 대중교통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이다 300만 달러를 내고 사흘 만에 두 손을 든 일은 유명하다. 영국에선 외국으로 빼돌린 노조 간부의 재산을 추적해 받아낸 적도 있다.

조만간 춘투(春鬪)가 예고돼 있다. 툭하면 벌어지는 불법 점거, 화염병 투척, 쇠파이프 시위라는 한국적 고질병을 치유하려면 형사 처벌과 함께 손해배상으로 대처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이다. 눈에 보이는 기물 파손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신용 추락 등 무형의 피해도 포함시켜 실질적 배상이 이뤄지도록 한다면 더욱 위력적이다. 차제에 법원은 외국처럼 상습적인 불법 행위에는 ‘징벌적 배상’ 판결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의 깊은 고뇌가 뒤따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