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실패=민심 이반' 청와대 뒤늦게 깨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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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보건복지 정책이 표류하면 바로 통치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

보건복지부장관이 경질된 21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 자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의보 재정 위기와 의약분업 혼선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 관리 구도를 헝클어 놓았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조속한 장관 경질에 대해 "강한 정부론으로 국정의 주도권을 높이려던 金대통령의 의욕이 의료사태로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생 정책의 첨병인 보건복지 업무가 갖고 있는 여론에 대한 영향력과 국정 파급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고 실토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음식점.목욕탕.약국.병원 등 길거리 간판의 70% 이상이 우리 업무다. 이익.이해단체가 수백개다. 요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의 정책 혼선은 오피니언 그룹의 논란이다. 그러나 우리 업무가 잘못되면 '민심 이반, 정권 위기' 로 연결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실제로 金대통령은 보건복지부 탓에 여러번 국민에게 사과했다. 1999년 초 국민연금 문제로 '민원 대란' 이 벌어지자 "혼란을 빚어 죄송하다" 고 말했다. 이번 의료체계 파탄 위기에도 '내 책임이 가장 크다' 고 말했다.

그럼에도 복지부장관은 '정치적 나눠먹기나 지역 안배.여성 우대를 고려하는 자리' 로 정치권에선 인식해 왔다. 업무장악력.전문성은 인선의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정부 당국자는 "정통파 복지부 출신인 최선정 장관마저 지난해 8.7개각에서 임명될 때 전문성보다 지역 안배의 성격이 강했다" 고 기억했다. 崔전장관은 장관 재임 때 유일한 강원도 출신이었다.

현 정부 첫 복지부장관인 주양자(朱良子)씨는 DJP 공동정부의 자민련 몫이었고,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두달 만에 물러났다. 후임인 김모임(金慕妊)씨는 재임 중 국회에 나가면 "업무 장악력이 떨어진다. 차관이 실세 아니냐" 는 비아냥 섞인 얘기를 들었다. 국민연금 사태는 金장관 시절 일어났다.

93년 김영삼 정권부터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장관 11명 중 복지부 관료 출신은 崔전장관과 전임 차흥봉(車興奉)장관 두명뿐, 여성 장관은 네명이다(YS때 朴孃實.宋貞淑씨 두명). 장관 임명에 정치적 고려가 앞서니 거의 단명(短命)한다. 의약분업.의보 통합의 정책 실패 책임자로 지목된 車전장관이 1년2개월로 둘째(93년 이후)로 오래 했다.

민주당 남궁석(南宮晳)정책위의장은 "복지부장관은 수많은 이익단체의 이해를 조정하는 갈등 조정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그런데 장관이 잠시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니 과장.계장이 실제 업무를 하는 꼴" 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외풍은 복지부를 '뒤치다꺼리 부서' 로 만든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권이 실천 가능성이 없는 탁상 공약을 선거 때 내놓으면 복지부는 이를 뒷받침하느라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의약분업뿐 아니라 의보 재정 통합.기초생활 보장제 보완 등 복지부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첩첩산중이다. 崔전장관의 경질이 확실시되면서 여권 내부에는 70년대 신현확(申鉉碻).고재필(高在珌)보사부장관처럼 발언권이 있는 실세 장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임 김원길(金元吉)장관의 기용은 이같은 측면을 두루 고려한 결과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金장관에게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보건복지 행정을 추진하면서 민심과 여론동향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감각' 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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