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운영방식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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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료보험 재정 파탄은 무리한 정책 추진이 가져온 대표적인 국정 실패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국정 운영 방식 전반에 대해 반성하고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관련 장관의 문책 경질을 포함한 개각설이 나돌고 있다.

개각과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 그리고 실패한 의약분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당연히 뒤따라야 할 필수 조치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국정의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국정 운영의 틀을 새롭게 짜는 과감한 자기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는 명분과 구호에만 집착한 무리한 정책 추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정부는 의료보험의 적자가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이를 무시한 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통합하는 우(愚)를 범했다.

부실한 재정 상태에서 오직 의약분업이란 명분에만 매달려 또다시 의보수가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재정 파탄을 초래한 것이다. 무리한 정책 추진의 원동력은 대선 공약이었다.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명분의 대선 공약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 여건들을 무시한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구호도 한몫했다. 대통령은 "문제가 없다는 보고만 듣고 시작한 게 잘못됐다" 고 말했지만 '아니되오' 를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정책 분위기를 조성한 게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명분과 대중적 인기 영합에 치우친 개혁 실적에 눈멀어 현실의 함정들을 놓친 게 아닌가. 이런 유사한 정책 운영 방식은 대북정책과 각종 경제정책에서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대 여론과 비판에 귀를 막은 것도 반성할 대목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간부는 의보 통합에 대해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했으나 묵살됐고 결국 그는 해직됐다. 국회에서도 의보 통합 및 의약분업이 재정 고갈을 부를 것이라는 지적이 숱하게 나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같은 우려의 목소리나 반대론은 반개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만약 옷벗은 고위 간부의 경고를 귀담아 듣고, 내외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점검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더욱 열심히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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