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꼭] "장애인 편견의 벽 너무 높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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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것만은 꼭 이뤄져야한다" 라는 지역별.계층별 민원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그러나 민원이 민원에 묻혀 지역의 시급한 문제들이나 소외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외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난을 통해 우리지역에서 제기되는 숙원사업 찾아내 소개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며 재활의 꿈을 키울 작은 공간이 정말 필요합니다. "

19일 오전 10시쯤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 명장소방서 옆 컨테이너 박스. 휠체어를 탄 장애인 10여 명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 보고 있었다. 한결같이 어둡고 굳은 표정이었다. 긴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다.

40여 평의 공간에 설치된 컨테이너 가 건물은 척수장애인연합회 회원 80여 명이 모여 쉬기도 하고 봉투만들기 등 돈을 벌기위해 간단한 작업을 하는 생활의 터전.

척수장애인연합회는 산재.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회원 모두 1.2급 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들 척수장애인들은 요즘 새 보금자리를 찾지못해 애태우고 있다.

동래구청이 지하철 3호선 공사를 이유로 시유지에 설치된 이 가 건물 철거를 여러 차례 요구해 곧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 건물이 철거되면 당장 떠돌이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있다. 척수장애인협회는 1989년 '장애극복 하나회' 로 출발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 때문에 7년동안 한평의 사무실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수십 곳전전해야했다.

대신 96년 4월 사직동 고속버스터미널 부산백화점 뒤편 자투리 공간에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설치해 임시공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3개월 뒤 어느날 밤 컨테이너박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민의 신고로 구청에서 예고도 없이 철거해버린 것이다.

둥지를 잃은 슬픔에 장애인들은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3년간 수소문 끝에 99년에 정착한 곳이 현재의 가 건물.

이영득(李泳得.53)척수연합회장은 "척수장애인들이 철거 걱정없는 보금자리를 가질수 있도록 사회에서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가건물이 또 철거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봉사단체 연심회(회장 權泳植)가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연심회는 오는 23일 국제신문문화센터에서 부산척수장애인협회 재활공간 마련 기금조성을 위한 서예.도자기 전시회를 연다.

權 회장(56)은 "척수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이들이 굳어가는 하반신을 운동할 수 있는 마당이 달린 건물을 짓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전시회를 준비했다" 고 말했다.

김관종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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