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해찬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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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백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뒤 그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내는 일이었다. 학생들의 평가는 동일했다. '이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25년 후 다른 교수가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 과제를 냈다. '25년 전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 였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사망하거나 이사간 20명을 뺀 1백80명 중 1백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변호사.의사.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다.

교수는 추가로 '이유를 알아보라' 고 학생들에게 시켰다. 당사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한 여선생님 덕분" 이라는 것이었다.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낸 교수가 "도대체 어떤 교육방법을 썼느냐" 고 물었다.

이미 늙어버린 여교사의 대답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 였다. 최근까지 베스트셀러였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다.

요즘 교사들간에 '이해찬(李海瓚)세대' 라는 말이 돌고 있다. 민주당 李최고위원이 교육부장관(1998~99년)이던 시절 그의 정책에 영향받은 학생들이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에 비해 학력이 낮아졌고,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덜하며, '교실붕괴' 를 겪는 학생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번 새 학기에 고3이 된 학생들은 이해찬 세대의 맏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내 비평준화 지역의 입시명문 B고교의 3학년 부장교사는 "얼마 전 3학년에 오른 학생들을 상대로 지난해와 똑같은 문제지로 전과목 시험을 치게 했는데 평균점수가 지난해보다 15점이나 떨어졌다" 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달갑지 않은 뜻으로 이름을 도용(?)당한 李최고위원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온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교육위기가 몇년 전 장관을 지낸 사람 때문일 리는 없다. 교사나 학부모인들 책임이 없겠는가.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변화도 한몫 했을 것이다. 점수가 몇점 낮아졌다고 위기 운운하는 발상 자체에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문제로 줄줄이 이민을 떠나고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지금 상황은 분명 무언가 잘못됐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하나.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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