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서울] 택시 없는 택시정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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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승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택시.서비스도 문제지만 승객들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 내려서야 하는 등 사고 위험도 적지않다.볼품없이 서있는 택시정류장은 더이상 제기능을 잃고 유명무실해졌다.

운전자들도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승객들이 횡단보도 앞이나 교차로 구석 등 아무데서나 손을 들기 때문에 급하게 설 경우도 많다.이 때문에 접촉 사고를 일으키거나 뒤따라오는 차들의 흐름을 막아 정체가 빚어지기도 한다.

승객들이 질서있게 타고내리고 운전자들도 편안하게 찾아가는 택시정류장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회사원 한주만(29.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출근 시간에 집 근처 대로변에서 택시를 탈 때 마다 속이 상한다.

빈 차가 없어 합승이라도 하려면 도로에까지 내려가 온갖 몸짓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들이 인도 쪽으로 접근하지도 않고 행선지를 묻는 바람에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때로는 자신보다 늦게 나온 사람이 저만치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려 허탈하기까지 하다.

택시정류장의 위치가 부적절해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로변 택시정류장은 아파트 단지 출입구로부터 30여m나 떨어져 있다. 이 곳을 지나던 택시기사 최모(47)씨는 "이렇게 멀리 걸어와 택시를 탈 사람이 있겠느냐" 며 "택시들도 대부분 아파트 출입구 바로 앞에 서 손님을 기다린다" 고 말했다.

택시가 서기 어려운 정류장 주변 도로 구조도 개선돼야 한다. 버스 정류장은 도로가 인도 쪽으로 굽어 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고 정차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택시 정류장은 이같은 곳이 없어 조금만 멈춰서도 체증이 빚어진다. 사고 위험도 크다.

서울의 도로 여건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로를 새로 뚫을 때는 물론 기존 도로를 정비할 경우 두세대의 택시라도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낡고 오래된 정류장 시설물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점도 문제다. 가판대.휴지통 등 각종 도로시설물 상당수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지만 택시 정류장은 1986년에 설치된 것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외관이 둔탁한 데다 야간 식별 장치가 없어 실용성이 없다. 페인트 칠이 벗겨지거나 각종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도 부지기수다.

◇ 대책〓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앞으로 택시 정류장을 새로운 시설로 교체할 예정이다.

75년부터 택시 정류장 설치와 관리를 맡아온 업체가 서울시와 재계약을 하고 새 모델을 개발했다. 서울시의 심의를 거쳐 선정된 이 정류장은 기능성이 강조된 깔끔한 외관을 자랑한다.

서울시 운수물류과 정영옥(鄭榮玉)팀장은 "다음달부터 서울 시내에 있는 5백20여개의 택시 정류장에 대한 교체 작업에 나설 것" 이라며 "시민들도 정류장을 이용하는 습관을 가져 달라" 고 말했다.

하지만 정류장 교체에 앞서 설치 위치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위치에 설치한 지 10년이 넘었으므로 변화한 도로 여건 등을 감안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인도와 도로를 각각 담당하는 구청과 경찰이 함께 최적 위치를 파악해 교체 효과를 높여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류장별로 두세대 가량의 택시가 상시 정차할 수 있도록 도로 위에 정차공간 표시를 하자고 제안한다.

지점별로 정해진 차량 대수만 정차가 가능하도록 지도해 기사들이 자율적으로 정차 위치를 찾아가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 경우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정류장에 가면 택시가 있다' 는 의식을 확산할 수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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