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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를 다시본다] 1. 다석과 제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1890~1981)는 인도의 간디와 견줄만한 '큰 사상가' 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평생 나서기를 꺼려하며 수도(修道)와 교육에만 힘쓴 '은둔자' 로 산 탓에 그의 사상은 지금껏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함석헌.김교신의 스승으로 더 알려져 있다.

다석은 서른여덟살이던 1928년부터 YMCA 연경반(硏經班)을 지도하며 가르침에 나섰다. 35년간 지속된 이 강좌를 통해 다석은 기독교와 불교.유교.노장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독특한 사유체계를 이룩한다.

그를 한국 종교다원주의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다. 지난 13일은 그가 탄생한 지 1백11주년이자, 그의 제자 함석헌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를 계기로 중앙일보는 다석의 사상과 족적을 재조명하고, 다석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재평가하는 시리즈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다석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은 1세대 제자들은 네댓명 정도다. 나이로는 11년 차이지만 3월 13일 생일이 같은 씨알 함석헌(1901~1989)이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석은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장으로 있을 때 함석헌을 처음 만났다. 1922년 다석의 나이 서른 두살 때로 함석헌은 이 학교 3학년 편입생이었다.

다석이 보기에 이 때 함석헌은 비범한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함석헌은 당시 회고담에 "내가 이번에 오산에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봐" 라고 했다고 적었다. 함석헌에 대한 다석의 지극한 관심이 드러나는 일화다.

다석이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떠날 때 역까지 가방을 들고 배웅했던 것도 함석헌이었다. 이 때 헤어졌던 두 사람은 해방이후 함석헌이 월남(47년)하면서 서울에서 재회했다.

함석헌은 다석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다석이 가장 아낀 제자는 따로 있었다.

김교신(1901~1945)이었다. 김교신은 일제시대 양정고등보통학교(지금의 양정고)교사로 있으면서 『성서조선(聖書朝鮮)』 등을 간행한 무교회주의자였다. 김교신은 함석헌과 동경(東京)고등사범학교 동기동창이다.

다석은 『성서조선』에 기고하면서 김교신을 알게 됐다. 그는 김교신의 사람 됨됨이에 매료돼 평소 가장 신뢰할 만한 제자로 생각했다. 다석은 "사람은 죽었다 살아나야 진정한 삶을 깨닫는다" 며 56년 4월 26일 자신의 상징적 죽음의 의식을 갖는데, 이 날짜를 잡은 것도 김교신이 죽은 날(4월 25일)을 의식해 그 다음날로 택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교신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

다석의 애제자 중 아직 살아서 맹렬히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사람은 김흥호(82)와 박영호(67)다. 20대에 다석을 만난 김흥호는 지금도 다석을 닮고자 하루 일식(一食)을 실천하고 있는 '산 다석' 같은 사람이다.

다석이란 호는 그가 하루에 한끼 저녁만 먹는다는 뜻이다. 이화여대 교수 및 교목실장을 지낸 그는 지금도 매주 이화여대 교회 주일학교에서 다석의 가르침(동양고전과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벌써 30년째. 수강생 중에 현직 대학교수들도 많다.

다석사상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박영호는 1세대 중 막내다. 59년부터 81년까지 20여년간 다석을 가장 가깝게 모신 사람으로 '마침보람(졸업증)' 까지 받았다.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한다' 는 가르침을 받들어 경기도 의왕시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석의 사상을 집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10년전 성천문화재단을 설립해 다석 사상을 전수하는데 힘쓰고 있는 류달영도 직접 다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밖에도 다석으로부터 가르침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수다하다. 대한적십자사 서영훈 총재, 숭실대 안병욱 교수를 비롯해 김홍근 등 다석사상연구회의 멤버들, 사상적 재조명 작업에 앞장서고 있는 외국어대 이기상.가톨릭대 정양모 교수 등도 넓게 보아 제자들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소중한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귀담아 들고자 지금도 배움터를 찾고 있는 '씨알(민중)' 들이다.

13일 1백11주기 기념식은 그런 씨알들이 모여 뜻을 기리는 정말로 조촐한 행사였다.

정재왈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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