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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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울지 마, 오빠가 찾아줄게. 그때까지 오빠 운동화를 함께 신자. " 엄마 심부름을 갔다가 금방 고친 동생의 구두를 잃어버린 알리(미르 파로크 하스미안). 아이는 부모가 새 신발을 사줄 여유가 없다는 걸 아는 터라 동생을 이렇게 달래며 맑은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인다.

"오빠 운동화는 크고 더럽지만 참아야겠지. 내가 오전반이고 오빠는 오후반이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야 하지만 어쩔 수 없고. " 오빠가 원망스런 자라(바하레 사디키)도 집세를 내지 못하는 집안 형편을 아는지라 오빠가 신발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오빠가 지각이라도 할까봐 달려오다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랑에 헐렁한 신발을 빠뜨린 후 '도망가는' 운동화를 쫓아 애처롭게 뛰어가는 자라, 그리고 달리기엔 자신이 있는데도 달리기 대회의 3등상이 운동화이기 때문에 1등이 아닌 3등을 목표로 뛰는 알리.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삶을 위해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마지디는 '순환' 으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와 함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대를 잇는 이란의 신세대 감독이다.

마지디가 친구에게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천국의 아이들' 은 영상이 화려하지 않으나 단순한 사건과 그 속의 사소한 해프닝만으로도 풍부한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어린이의 순수함을 주제로 한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년), 파나히의 '하얀 풍선' (95년)을 떠올리게 하지만 감동과 재미가 한층 깊다는 게 중론. 이란 영화 중 처음으로 9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전미 박스오피스에도 4개월 동안 머물렀다.

또 사실적 묘사에 중점을 두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자전거 도둑' (비토리아 데 시카 감독)을 연상케 하는데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 와 이 영화를 최근 네오 리얼리즘의 계열의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가난한 환경에서 평범하게 자라고 있는 하스미안과 사디키는 이 영화가 첫 출연작이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것은 티없이 맑은 마음뿐이다. 아이들의 연기는 뛰어나다기보다 평소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 속에 옮겨 놓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마라톤을 하느라 엉망이 된 발을 연못에 담그자 상처를 감싸듯 발쪽으로 모여드는 금붕어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것 같고 넓이뛰기를 하는 체육시간에 발보다 큰 운동화를 신은 자라가 겸연쩍어 하며 짓는 미소는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미국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에 참여한 것도 이색적인데 이 영화가 지닌 상업적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17일 개봉.

신용호 기자

이란 영화는 순하고 착하다.섹스와 폭력 없이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기량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이건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사회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이란 감독들에게 '맑은 동심' 은 유일한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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