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생쥐와 인간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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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모든 생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영묘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뜻일 게다. 근래 그 자존심에 금이 가는 과학적 증거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 '30억쌍 DNA' 유사점 발견

인간 지놈(유전체)을 해독한 데 이어 다른 동물의 지놈도 풀이되고 있다. 미국 셀레라 제노믹스의 연구팀이 생쥐의 지놈지도를 완성하고 보니 인간과 비슷하게 약 30억쌍의 DNA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놀라운 과학업적은 분명 학문적 낭보이지만 스스로 영특하다고 우쭐거리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덩치 작은 미물의 수준으로 격하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인간과 쥐 지놈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관찰하면 인간 지놈에 관해 정보를 더 많이 캐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활용해 암.당뇨 등 난치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기간세포(stem cell)연구도 생물학의 새로운 연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가지 특수한 세포와 조직으로 자랄 수 있는 미성숙 세포들을 말하는 기간세포는 주로 태아와 태반에서 추출된다. 때문에 복잡한 윤리문제가 얽히고 설킨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이미 뇌세포 4분의1을 인간의 것으로 심은 생쥐를 실험실에서 기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곧 거의 1백% 인간 뇌세포로 바뀐 생쥐를 실험 사육할 계획이란다. 생쥐가 사람처럼 인간적 특성이나 지성을 갖거나 인간적으로 행동할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인간 뇌세포를 가졌더라도 생쥐의 몸체 해부학 때문에 뇌작용이 억제될 공산이 크다.

이해득실의 판단이 어렵다. 생화학적으로 인간적인 두뇌를 장착한 생쥐는 신개발 약물의 임상실험에 앞서 뇌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보물단지다. 이에 반해 그런 실험에서 얻을 이득이 예상에 미달할 것이란 발표도 있고 실험실 동물들에 대한 가해행위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스탠퍼드 대학의 와이스만 교수도 연구계획에 의구심을 갖는다.

동일한 실험을 유인원인 침팬지에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인데 그런 유전자 변형생물의 심리상태가 어떨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 같은 게 양산될 우려가 있다.

국내 과학계의 연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축 복제기술은 바짝 선진국을 뒤따라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국내 지놈 연구실적은 어떠할까.

생쥐와 인간, 인간과 생쥐 사이에는 얼마나 거리가 있을까. 불교나 힌두교 가르침에서처럼 돌고 도는 삶의 윤회과정 속에 종(種)간에 칸막이 벽이 없는 동격의 존재들인가. 어찌 생각하면 인간이 생쥐를 닮아 어둠속에 무리지어 살며 무언가 음흉한 계략을 꾸미는 존재들로 변모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요즘 우리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둘러보면 인간답게 생을 영위하는 공동체라는 데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인간으로서 으뜸되는 자랑은 각자가 이성을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독자적인 판단 없이 이런 저런 명분으로 무리를 이뤄 집단행동을 즐기는 게 우리가 아닌가.

밖으로는 대북관계 시각에서 좌우 구별, 안으로는 권력다툼에서 자파 타파 구별하는 것을 보면 우두머리를 맹종하다 집단익사하기도 하는 레밍 들쥐떼를 닮았다. 미국 부시 정부의 균형잡힌 대북관을 먼저 발설한 국내인사가 있었다면 들쥐떼에 물리지 않았을까.

*** 집단이익 집착하면 안돼

경제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해온 관료들이 부실징후 짙은 특정 재벌기업의 자금지원을 위해 갑자기 특단의 조치를 채권은행들에 요구하고 나선 대목에서 정치에 물리고 금융을 무는 생쥐들의 이빨 자국을 보게 된다면 지나친가.

전문직종.일반노조 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집단이익 추구행위를 통해 우리는 고스란히 생쥐의 뇌세포를 이식받은 존재들임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가. 거짓 자존심 때문에 인간과 생쥐 사이의 거리를 멀리 설정했던 게 아닌가. 요즘 생쥐가 형제처럼 느껴짐에 전율한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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