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 지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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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면서 국제 자금흐름에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국제 외환시장의 자금이 달러화를 피해 유로화와 엔화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이들 통화 가치가 크게 오르고 있다. 국내 원화가치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2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06.91엔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이후 처음으로 107엔선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유로화 대비 달러 환율은 1.2732였다. 8개월새 최저치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달러당 1135원으로 전날보다 5.7원 떨어지며 나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2000년 11월 10일 이후 최저치다.

국제자금이 달러화 자산을 버리고 원자재 시장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시장 전문가들은 원유값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최근 다시 급등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진단한다. 세계 각국의 증시는 국제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세계경기의 둔화 전망으로 동반 하락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를 피해 국제자금이 몰리고 있는 비달러화 자산은 가격이 치솟고 있다. 국제 금값은 지난 22일 온스당 423달러45센트를 기록했다. 5개월 전보다 7.5% 오른 수치다. 같은 기간 알루미늄(9.4%).구리(6.1%)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시장을 이탈했던 국제자금은 신흥시장과 선진국시장을 오가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상렬.정효식 기자

<뉴스분석>

'미 금리 인상 → 달러 강세' 시나리오 깨져
기대 못미친 미국 경기, 최악 경상적자 탓

국제 자금시장이 요동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달러화 약세다. 달러 값이 다른 통화에 비해 싸진다는 얘기다. 이는 국제 자금이 미국보다 다른 나라에 훨씬 좋은 투자 기회가 있다고 보고 달러화 자산보다 다른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분석가들이 예상했던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달러화 강세→국제 자금 미국 환류'라는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6월 이후 세 차례 찔끔찔끔 금리를 올렸다.

이는 미국 경제가 기대만큼 강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은 탓이 크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4.2%에서 올 2분기엔 3.3%로 떨어졌다. 고용지표도 기대에 미치지 않고 있다. 경기가 확실하게 살아나지 못하자 FRB도 과감한 금리 인상을 주저하게 된 것이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도 달러화 약세의 원인이다.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달러 값을 될 수 있는 대로 낮춰야 한다. 반면 미국 바깥의 투자 기회는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낙관적으로 비치고 있다. 지난 4월 말 과열 논란 속에 경착륙 위험이 제기됐던 중국은 3분기 연속 9%대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경기와 직결된 아시아 신흥시장 경기도 한국을 제외하고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달러화 약세와 원화 강세는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환율방어도 한계가 있다. 인위적인 환율방어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한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수출액이 줄어든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수출까지 힘을 잃으면 경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국제 자금이 아시아를 이탈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점은 그나마 한국 증시에 위안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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