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쇼핑몰, 식품 유통기한·성분 ‘묻지마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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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달 말 회사원 정모(33·서울 관악구)씨는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두유 2박스(120개)를 구입했다. 열흘 뒤쯤 정씨는 우연히 두유팩에 찍혀 있는 유통기한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불과 10일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짧은 유통 기간 내에 혼자서 그 많은 두유를 다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둘러 해당 쇼핑몰에 교환을 요청했지만 “제품을 받은 뒤 7일 이내인 교환 가능 기간이 지난 데다 유통기한 만료일 이전에 제품이 도착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뿐이었다.

정씨는 “팩에 담긴 두유는 유통기한이 길어 한꺼번에 많이 사서 오래 먹으려 했다”며 “쇼핑몰의 상품 정보에 유통기한만 표시돼 있었어도 이 두유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초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본산 다크 초콜릿을 주문했던 하모(34·경기도 성남시)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제품을 받아보니 열량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의외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이어트 때문에 열량이 적은 초콜릿을 사려고 한 것인데 온라인 상품 정보에 이 같은 영양성분이 적혀 있었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내 온라인상의 식품·음료 시장은 연 매출액이 1조원을 넘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주요 식품 선택 기준인 유통기한·영양성분 등의 정보가 정작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와 녹색소비자연대(상임대표 이덕승)가 지난달 2∼5일 국내 대표적 온라인 쇼핑몰인 G마켓·11번가·옥션·d&shop에서 판매 중인 가공식품 8종의 식품 표시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라면 소매점 133개 중 상품 정보에 유통기한을 적은 곳은 8개(6%)뿐이었다. 과자는 소매점 128개 중 20곳(16%)만 유통기한을 표시했다. 탄산음료도 20개 중 2곳뿐이었다. 또 통조림의 경우는 소매점 20개 중 4곳만이 영양성분을 표시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정책팀장은 “가공식품을 구입할 때 유통기한·영양성분은 중요한 선택 기준”이라며 “대다수 온라인 쇼핑몰에서 기본 정보를 올리지 않아 소비자의 알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품·음료의 기본 정보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것은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상 식품과 음료에는 반드시 유통기한과 영양성분을 적어놓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상의 상품 정보에는 이 규정이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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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퍼스트의 변창우 변호사는 “콜레스테롤·나트륨 등 일부 영양성분은 고혈압과 당뇨병 등 성인병 환자가 식품을 살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정보”라며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이 같은 정보를 반드시 표시하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품 소매점을 운영 중인 K씨는 “유통기한과 영양성분 등을 온라인 식품 정보에 올리는 일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며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표시를 굳이 안 한다”고 말했다. ‘11번가’의 노우일 그룹장도 “법적인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인터넷 소매점들을 설득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김호태 전자상거래팀장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식품에 대해 유통기한과 영양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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