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두달만에 또 지원… 정상화 아직도 무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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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와 채권단의 현대 살리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긴급 소집된 채권은행장 회의는 현대전자에 대한 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전자는 이번 결정으로 최대 2조원까지의 자금을 지원받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만으로 회사 경영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은 없다.

부채가 워낙 많은 데다 주력 제품인 반도체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지원으로 현대그룹의 유동성 문제는 확실히 해결될 것" 이라며 "반도체 가격이 하반기에 4달러대 이상으로 회복되면 현대전자는 내년에 1조원 이상의 유동성 확보가 가능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 해외에서 울린 비상벨〓현대호의 빨간 불은 지난주 현대전자의 미국 현지법인인 현대세미컨덕터아메리카(HSA)에서 켜졌다.

HSA는 현지에서 5천2백만달러를 빌렸는데 밀린 이자만 1천6백만달러였다. 독자적으로 갚을 능력이 없어 현대전자의 지원이 없으면 부도를 낼 지경에 이르렀다.

HSA의 부도는 이 회사에 12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선 현대중공업.상선.종합상사 등의 현대 계열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상황이었다.

정부는 지난 9일 채권단에 수출환어음(DA)매입으로 1억5천만달러를 지원하도록 해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대전자의 자금 사정이 풀릴 기미는 없다. 현대전자는 64메가D램 가격이 2분기에 2.6달러로 바닥을 친 뒤 3분기부터 오르리란 전제 아래 자구 계획을 짰는데 현재 현물시장 가격은 2.5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5조5천억원으로 예상하는 현대전자의 올 매출액은 1조원 넘게 차질을 빚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현대에 대한 지원은 언제까지〓채권단은 이날 회의에서 이탈을 막기 위해 지원을 거부하거나 이행 실적이 미진한 채권은행에는 미지원금액의 일정액을 위약금으로 물리기로 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올해 만기가 돌아올 3조3천억원의 회사채 신속 인수▶은행간 협조 융자 8천억원 등으로 현대전자를 지원해 왔다.

지난해 말 이를 결정할 때 채권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고 장담했는데 두달여 만에 추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단이 국내에서 할 만한 것은 다했다고 본다" 며 "문제는 향후 반도체 가격과 현대전자의 추가 투자인데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외환은행 이연수 부행장은 "현대전자의 자구노력이 부진할 경우 금융지원문제를 재검토할 것" 이라며 "현대전자도 필요하다면 출자전환까지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전해 왔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계 관계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10일 결정된 현대에 대한 지원은 상시 퇴출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며 "현대가 뼈를 깎는 자구 이행으로 화답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정재.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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