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불어나는 국민연금기금 획기적 운용방안 마련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국민연금기금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농담이 오간 적이 있다. 얘기인즉 피임기구 제조업체에 로비해 불량품을 많이 생산하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너무 떨어져 기금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지니 예상치 않은 임신이라도 유도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웃어넘기기엔 왠지 절실함이 배어나오는 뼈대 있는 농담이었다.

국민연금과 관련한 이슈들에는 한국경제의 암담한 미래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우선 저출산으로 인한 노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현행대로라면 이 기금은 2030년께 640조원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47년께 고갈될 운명에 처해 있다. 또한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금리가 하락하고 그 결과 기금의 운용수익률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안정적 운용이 강조되다 보니 기금은 채권, 그것도 국채를 엄청나게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국채의 과도한 편입은 결코 안전하지 않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채권 싹쓸이 현상이 심각하다. 현재 기금의 국채 편입 비중은 40%가 조금 넘는다. 100조원 이상의 기금 운용 액수를 감안하면 무려 40조원 이상이 국채에 들어가 있는데 2004년 말 기준 국고채 외평채, 국민주택채권의 잔액이 약 170조원이나 된다고 보면 국채발행 잔액의 25% 정도를 국민연금이 독식하게 된다. 얼마 지나면 운용 규모가 몇백조원으로 늘어나는데 채권을 지금처럼 사들이다가는 연금기금이 국채를 싹쓸이하면서 채권가격을 올리고 이에 따라 이자율은 떨어지면서 운용수익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둘째, 국채는 미래에 국민 세금으로 갚을 돈이고 이자도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따라서 연금기금의 국채 운용수익도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그런데 연금 수혜자나 납세자는 모두 국민이다. 결국 기금의 과도한 국채 운용은 국민이 오른쪽 주머니에서 세금을 빼 왼쪽 주머니에 국채 이자로 넣으면서 매우 안전한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고 여기는 우스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경제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통화 증발로 인한 인플레라도 발생하면 국채의 실질가치는 급락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넷째, 2030년 이후 지출이 늘면서 기금이 국채상환을 요구할 경우 정부는 더 이상 차환을 통해 연장시키지 못하고 갚아야 하는데 이 원금은 그 시점의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2030년대의 경제활동 인구들은 재앙에 가까운 세금 증가를 경험할 수도 있다.

결국 몇십억원이 아닌 몇백조원이 국채에 편입되는 상황에서는 국채 운용도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기금 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운용의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640조원까지 늘어나면서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이 기금의 지배구조를 다룰 기구를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직속으로 설치하고 이 기구에서 보다 광범위한 논의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몇백조원을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국채를 포함, 어느 종목이든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토대로 운용 대상의 다각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량 주식을 중심으로 적정 규모까지 편입할 수 있도록 해 기금 수익률을 제고하도록 해야 한다. 단, 이를 주식시장에 대한 인위적 부양 도구로 삼는 것은 철저하게 방지해야 한다.

편입된 주식에 대해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당연히 허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가 기업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관치 가능성과 더불어 수익률을 낮출 가능성이 있는 노조.시민단체들의 기업경영 간섭은 배제시킬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공정한 연금운용의 지배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해외자산도 충분히 보유하도록 함으로써 수익률을 제고하는 동시에 이 자금이 경제 위기시의 후선 외환보유액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국가 위험을 감소시키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가 줄어들게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용 대상이 한 곳에 치중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한참 쌓이다가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이 많은 돈을 무엇을 통해, 어떻게 운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보다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윤창현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