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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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33면

나라가 강해지면 밖에서 그 지도자를 알아준다. 국력이 곧 지도자의 이미지가 된다. 하지만 나라 안에서도 꼭 그런 건 아니다. 근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군주)였던 아멘호테프 4세가 그랬다. 기원전 14세기 그는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로부터 강력한 제국을 물려받았다. 근동지역까지 세력권에 넣었다. 그에게 덤빌 외부의 적은 당대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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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에서 수도 테베(현재 룩소르)의 신관들이 맞섰다. 신의 뜻을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아멘호테프 4세는 권력과 권위를 위한 극약 처방을 썼다. 바로 종교개혁 카드다. 테베의 신관들은 수도의 수호신인 아멘을 주신으로 모시면서 다른 여러 신을 함께 숭배하는 다신교도였다. 파라오는 다신교를 금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일신교를 제창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왕위와 권력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을 버렸다. 심지어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까지 바꿨다. ‘아멘신이 기뻐한다’는 뜻의 아멘호테프를 ‘아톤신을 따르는 종’ ‘아톤신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크나톤으로 고쳤다. 오랜 수도 테베도 버렸다. 다신교 숭배자들이 득실거린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사막에 신도시를 지어 도읍을 옮겼다. 신도시는 ‘아톤신의 지평선’이라는 뜻의 아케타톤으로 불렸다. 지금의 이집트 중부 알아르마나 지역이다.

그는 그곳에 지배층과 예술가·장인들을 데리고 이주했다. 새 수도에선 아르마나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자유롭고 인간적인 신 예술이 융성했다. 파라오 중심의 기존 양식에서 탈피해 왕비와 공주, 일반인도 대거 그림과 조각에 등장했다.

문제는 아르마나 시대가 당대에 끝났다는 것이다. 아멘호테프 4세가 세상을 떠나고 허약한 후계자가 파라오가 됐다. 새 파라오는 왕좌를 지키려고 테베의 신관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유일신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 다신교로 돌아갔다. 수도 역시 테베로 다시 옮겼다. 엄청난 국고를 들여 건설했던 아케나톤은 폐허가 됐다. 건축 재료는 뜯겨져 나가 테베를 재건하는 데 사용됐다. 전임 파라오에 대한 기록도 상당수 제거됐다.

아멘호테프 4세 시절 이집트가 얼마나 부강했는지는 그의 아들이 묻힌 무덤에서 알 수 있다. 바로 엄청난 부장품으로 유명한 투탕카멘이다. 그는 아들에게 ‘아톤신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는 뜻의 투탕카톤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아들은 파라오가 되고 다신교를 받아들이면서 이름을 ‘아멘신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는 뜻의 투탕카멘으로 바꿔버렸다. 아버지가 물려준 종교와 수도를 아들이 버리는 사건이 대를 이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내부 혼란 때문인지 투탕카멘이 세상을 떠난 뒤 18왕조는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달 말 룩소르에서 아멘호테프 4세의 아버지이자 투탕카멘의 할아버지인 아멘호테프 3세의 거대한 두상이 발견됐다. 두상의 발견을 계기로 역사의 교훈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권력욕이 권력을 망친다는 것 말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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