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좋다] 맑은 무심천 바라보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한때 청계천 고가도로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1950년대 복개한 청계천은 지금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청계 고가 밑에 개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라도 해본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청계천(淸溪川)은 말 그대로 맑은 계곡의 시내라는 뜻이다.

지금의 그 청계천에서 맑은 계곡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으니, 바로 여기에 청주가 좋은 까닭이 있다.

내가 사는 청주에는 무심천이 흐른다. 무심천은 '무심한 마음'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다행히 위를 덮어씌우지 않아서 흐르는 물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하천이다. 그렇다고 자연하천 그대로 보존된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하천치고는 비교적 깨끗하고 또 자연스러운 하천이다. 이 자연의 선물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밖에 내가 만약 서울에 살았다면 주택 문제로 20년은 족히 고생을 했을 것이며 교통에 소비하는 생존의 시간은 세배쯤 더 지불해야 할 것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폐의 고통은 지금 청주보다 네 배는 더 심하고 소음공해로 인한 정신적 불안은 두 배쯤 가중될 것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서울은 청주보다 나쁘다. 그런데도 서울사람들은 청주보다는 서울에 살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사람들은 놀랍게도 부산을 시골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강남 사람은 강북에 사람 사는 것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아주 못된 발상이다.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결단코 이사는 가지 않고 어렵게 통근을 하는 것이 서울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다.

왜 그럴까. 교육과 정보, 문화의 차별 때문에 그럴 것이니 우리는 이제 그러한 공간적 차별을 해체하고 모든 지역이 평등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중심에 있다고 자부하는 천민(賤民)들은 이제 그 착각에서 벗어나서 중앙권력의 특권을 포기하고 평등한 인간주의로 돌아와야 한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모든 중심권력과 특권을 서울이 장악하던 공간적 파시즘의 시대는 지나갔다. 모든 지역이 세계로 열려 있어 자기실현에 절대적인 차별이 없으며 공간과 시간의 패러다임은 바뀌어 가고 있다. 청주 시민은 청주를 사랑하고 또 청주가 가장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지방에 사는 사람들 역시 그러하리라.

김승환 교수 <충북대 국어교육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