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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금융기관들 '수선 마케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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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A과장은 지난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10% 깎이자 고민에 빠졌다. 생활비와 아이들 과외비를 줄이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안면 때문에 가입한 보험을 정리하려고 보험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친절한 재무설계사를 만나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은 저축성보험을 해지하고, 건강.상해보험을 종신보험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월 50만원이었던 보험료를 25만원으로 줄였다.

금리가 낮아지고 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보험.은행 등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고쳐주듯 고객의 저축.투자 구조(포트폴리오)를 수정해 주는 '수선 마케팅'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수선 마케팅이란 포트폴리오에서 중복된 부분을 빼고 취약한 부분을 추가하는 등 금융자산을 재구성해주며 자연스럽게 자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보다 기존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고객들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기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장기 고객 확보와 영업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 생명보험업계가 앞장서〓국내 생명보험사들은 종신보험 등 재무설계형 상품을 앞세워 수선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기에 국내에 진출한 외국 보험사들이 종신보험으로 시장을 파고든 데 자극받았다.

교보생명 전기보 플러스팀장은 "전체 가구의 86.2%가 보험에 가입한 상태라서 새로운 수요층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며 "암 등 특별한 경우에만 보상을 받는 상품에 중복 가입한 고객이 많은 점에 주목해 이를 해소하면서 다른 상품을 권유하는 식으로 상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생보사들은 대학을 졸업한 남성 설계사로 짠 재무설계 전문 영업망을 강화하는 한편 기존 여성 설계사를 상대로 보험.예금.부동산.세무 등 여러 분야의 재테크 교육을 실시해 '재무설계' 전문가로 양성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 5일 광화문과 여의도 등 서울 지역 세곳에 남성 재무설계사로 구성된 '플러스 브랜치' 를 개점한 데 이어 기존 여성 설계사 중 80여명을 선발해 '트리플팀' 을 구성했다. 1998년 대졸 남자 설계사로 구성한 라이프테크팀을 구성한 삼성생명도 몇년 안에 여성 설계사 6만명을 재무설계 전문가로 양성한다는 계획 아래 우선 연말까지 1만5천명을 상대로 교육할 예정이다.

◇ 증권사 랩어카운트도 인기〓증권업계가 최근 경쟁적으로 내놓는 종합자산관리서비스(랩어카운트)도 수선 마케팅을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주식과 펀드에 따로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일 와이즈랩을 발매한 LG증권은 3주 만에 3천8백억원의 수신고를 올렸다. LG증권 장정욱 팀장은 "금융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전문적 지식이 떨어지는 개인이 투자 위험과 수익률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 며 "증권사도 매매 수수료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 영업 비중을 확대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은행권도 기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꾸려는 고객을 대상으로 수선 마케팅을 하고 있다. 지난달 HSBC와 씨티은행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연 7.9%로 낮추고 수수료를 면제하며 시장을 잠식하자 신한.국민.주택은행 등도 금리를 7.5%까지 낮추고 근저당설정료를 면제하는 방법으로 맞서고 있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위원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실질금리 1% 상황에서 개인이 다양한 금융자산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며 "금융기관간 울타리도 낮아지고 있어 재무설계를 활용한 수선 마케팅이 효과를 볼 것" 이라고 말했다.

나현철.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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