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노숙자를 왜 감추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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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침에 신문을 받아보니 7일 새벽에 운동을 하던 한 시민이 서울 동대문운동장 공중전화부스 옆 쓰레기더미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주검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아마도 술에 찌들고 허기진 그 노숙자의 몸은 막바지 겨울추위를 이겨내기에 힘겨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사를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 것은 이미 사망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과 망자의 동생이 말한 '가난했던 기억밖엔 없다' 는 체념 섞인 한마디의 넋두리였다.

3년 전 노숙자들의 건강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을지로와 서울역 지하도를 처음으로 찾았을 때 수백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밥을 타고, 구석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먹어대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때는 '적어도 밥이라도 품위 있게 먹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아프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진료소 한 군데 정도는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노숙자와 관련된 관(官)과 민(民)의 노력이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음에도 아직 거리의 상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 이미 이슬을 맞으며 잠자지 않도록 각종 임시보호시설에 수용돼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 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는 불안정한 여건에 놓여 있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동안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아마도 노숙자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누구나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노숙자 정책의 문제를 가장 주요하게 지적할 것이다.

즉, 지금까지 관의 정책은 노숙자들을 공공에 더러운 병을 옮기는, 혹은 도시미관을 해치는, 혹은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몰염치한 사람들로 간주하고 거리에서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데 주력해 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정책 방향의 문제점이 급기야 이제는 거리의 주검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 를 보장해야 한다는 표현을 다시 설명하자면 적어도 노숙자들에게 상시적으로 눈.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하룻밤의 잠자리를 제공하고, 씻고 싶을 때 적절하게 씻고 빨래도 할 수 있게 해주며, 아플 때 찾아가면 언제나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받을 수 있고, 위중할 경우엔 생명 유지를 위해 적절히 의뢰.후송될 수 있도록 해주는 현장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주지하듯 우리보다 잘 사는 서구 여러 나라의 거리에서도 노숙자들은 쉽게 눈에 띄나, 이들은 이미 거리의 노숙자들을 감춰야 할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다양한 현장 서비스를 오래 전부터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지금과 같은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노숙자들은 계속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갈 것 같다.

특히 노숙자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실무 책임자들의 노숙자 문제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선입견의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어 노숙자 문제의 올바른 해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된다.

서울시 등 노숙자 전담 부서가 있는 지방정부가 민간단체 혹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배제하는 등의 부적절한 처사를 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공공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겸손한 인정과 관이 먼저 그동안 사회복지에 헌신해왔던 여러 민간단체들을 존중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워져 정리해고의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민들도 때로는 자신이 빠질 수도 있는 가슴 아픈 현실로서 노숙자 문제에 공감하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진심을 모아가야 할 것이다.

주영수 <인도주의실천의사協 의료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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