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부시 "북한 변화론은 DJ의 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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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일 미국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는 '회의(懷疑)' 와 '검증' 두 가지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확실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런 자극적인 표현을 쓴 것은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이라고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해석했다. 여기에다 북한과 어떤 합의를 하건 '명확한 검증' 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 관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원한다" 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의 '북한 변화론' 을 부시 대통령은 '金대통령의 비전' 이라고 받아들였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 (金위원장)에 대해 金대통령은 '현실적' 이고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란 말도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金대통령에게 부시 대통령이 요구하는 '검증' 에 철저하라는 압박일 수 있다" 고 이 소식통은 분석했다.

이런 발언들은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밀고가자는 다짐을 담은 공동 발표문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공동 발표문이 한.미 공조의 총론을 설명한 것이라면 기자회견 발언은 각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간에 긴밀한 협의를 요구하는 부분이 많음을 뜻하는 것" 이라고 워싱턴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과거 클린턴 정부가 짜놓은 대북정책 로드맵(접근방식)을 재검토하겠다는 생각을 내보인 셈이다.

부시의 이런 발언들이 한.미간 시각 차이로 비춰지자 청와대와 백악관측은 "그렇지 않다" 고 해명하고 있다. 반기문(潘基文)외교통상부차관은 "의구심이 있다거나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해하지만 남북, 미.북관계는 한.미간 공조를 통해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김하중(金夏中)외교안보수석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데 '金대통령의 주도적인 역할' 을 부시 대통령이 지지한 대목에 초점을 맞췄다.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金대통령의 대북 프로그램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는 뜻으로 우리측은 받아들이고 있다. 정상회담 뒤 열린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金대통령은 "한.미간 대북정책에서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각 차이는 없다" 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부시측은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한반도 안정을 이루는 데 포용정책을 대체할 방법론을 내놓지 못했다" 고 주장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한.미 동맹이라는 공조 수단의 틀을 벗어난 대북 접근 수단은 '속도 위반' 이라는 게 부시의 메시지" 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DJ-부시 회담은 한국 정부에 '새로운 부담' 을 주었다. 한국 정부는 대북정책의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고 이 소식통은 지적했다.

워싱턴〓김진국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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