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곡된 교육 바로잡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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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 우리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이 봇물 터지듯 일제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실 붕괴, 죽은 공교육, 번창하는 사교육, 교육이민 등 지금까지 교육체제에 내재됐던 문제점이 일시에 터져나오는 모습이 흡사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있었던 융단폭격을 목격하는 듯하다.

요즈음 논의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요약하면 지식.창의성.예절 등 꼭 필요한 교육은 시키지 못하면서 학생들은 그들대로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처참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교육을 위해 이 땅을 떠나려는 해외이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와 관련해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든 교육정책에 대한 질타와 비판도 거세다.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교육정책이 교육문제를 푸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과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한국 교육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교육이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일부 언론의 문제 제기는 한국 교육이 이대로는 안되고 앞으로 교육의 근본이 크게 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되고 있다고는 보지만, 그러나 한국 교육의 문제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난도질하다 보면 개선을 위한 노력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자괴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교육현장에서는 아직도 열악한 교육여건 아래서, 때로는 홀대하는 교육정책아래서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리고 열악한 교육여건 아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제는 교육현실에 대한 폭로와 비판보다 한국 교육문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자아실현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기술.태도.가치관 등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교육에서는 이러한 지식활동 등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여건과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자아실현과 사회생활에 유용한 지식활동을 하도록 여건이나 동기 부여가 잘 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입시만을 생각하는 교육 때문에 유용성 있는 지식과 창의성 있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입시위주 교육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인문 숭상의 전통과 학력.학벌 등과 같은 귀족주의의 산물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교육개혁안이나 혁신적인 교수방법도 입시위주의 교육현장에서는 뿌리를 내리기 어렵게 돼 있다.

또한 자기 자녀의 교육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교육관이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 교육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왜곡된 교육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경직된 교육제도와 조령모개식 교육정책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경직된 교육제도는 교육수요자들의 선택 폭을 좁히고, 단 한번의 실수로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한다. 그래서 한번의 대학입시로 인생의 성패가 판가름나고 있다.

교육정책의 혼선은 교육자에게는 물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치명타를 준다. 이는 교육부장관의 잦은 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교육정책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 차원의 상설 교육정책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토록 해야 한다.

열악한 교육환경도 올바른 교육의 실시를 더욱 어렵게 한다. 교육개혁과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정작 교육투자의 우선순위는 하위권을 맴돌아 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려면 이에 걸맞은 교육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교육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안정적인 교육재정이 확보돼야 한다.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지식기반사회의 핵심활동인 새로운 지식의 창출, 보급.확산, 활용 등이 교육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식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도 교육투자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김영철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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