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덕수궁 땅속 어딘가에 고종의 황금 항아리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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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허영섭 지음, 채륜
438쪽, 1만9000원

지금 젊은이들 중에는 이 건물을 보지 못한 이들이 꽤 될 듯 싶다. 1995년 해체되어 지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이니 이미 역사다. 당시 중앙 홀에 걸렸던 벽화 두 점만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남아있다. 일본이 지난 세기의 전반기 동안 조선을 통치할 때 한반도를 옥죄기 위해 설치한 최고 행정관청 조선총독부 얘기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95년 8월 15일 광복절에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식을 열었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자신들이 과거 식민지에 세웠던 건물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 중에는 제 주머니를 털어 통째로 옮겨 가겠다는 뜻을 전한 이도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그만큼 한·일 관계의 역사적 상처를 표상한 민감한 유적이었다.

지은이가 96년 출간했던 『조선총독부, 그 청사 건립의 이야기』를 대폭 손질한 이 개정판을 내면서 다시 한번 제기한 질문도 이런 맥락이다. “과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정당했는가?” 영원히 평행선으로 끝나버릴 듯한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 논쟁’을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일제강점기란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해서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16년 6월 25일 지진제(地鎭祭·땅바닥을 파헤치기에 앞서 땅속 터줏대감이 노여움을 일으키지 않도록 고사를 지내는 의식)부터 26년 10월 1일 낙성식까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쓴 서술 방법 덕에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주제가 구수하게 풀렸다. 이를테면, “여기서 잠깐 고종 황제의 퇴위를 야기 시켰던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말머리를 돌려 보자. 이와 더불어 고종이 장차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쓰도록 덕수궁 어딘가 땅속 깊숙이 묻어 두었다는 ‘황금 항아리’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있으랴” 같은 식이다. 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 ‘매일신보’ 등 당대 신문과 논문·소설·저서·사사·보고서 등 여러 자료를 엮은 솜씨가 독서를 즐겁게 한다. “총독부 청사의 낙성식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잔칫상이라면 단성사의 (영화) ‘아리랑’은 눈물로 얼룩진 진혼제나 다름없었다.”

역사는 흔히 운 자보다 웃은 자만 기록한다고들 말한다. 경복궁 복원 작업이 끝나고 성대한 낙성식을 치를 때, 우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억할 것인가.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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