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NMD 봉합 전에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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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일 오전 1시(현지시간 7일 오전 11시) 백악관 - .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만난 자리에서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문제가 거론됐다. 金대통령이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로 일단 마찰은 피했다.

그렇지만 이같은 임시방편으로 봉합될 문제일까. 핵무기도 없는 한국에서 왜 탄도탄요격미사일(ABM)과 NMD라는 낯선 단어들이 논쟁의 초점이 됐을까.

미국의 NMD 구상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북한 등 '불량국가' 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자 클린턴은 NMD의 배치를 차기 정부로 넘겼다.

부시의 NMD 강행 의지 천명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북한의 핵개발 중단에 관한 1994년 북.미간 약속) 파기 경고가 이어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처럼 북.미 긴장을 전제로 한 NMD의 추진은 결코 우리와 무관할 수 없는 문제다.

한.러 정상회담의 파문이 번진 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 장관은 "러시아측이 공동성명에 NMD를 포함하자고 했으나 거부했다. 그렇지만 ABM은 미국도 합의한 것이라 넣을 수 있다고 했다" 고 해명했다.

미국이 어떤 계획을 추진하건 그 자체는 미국의 몫이다. NMD를 반대하는 러시아나 유럽국가들이 NMD를 비난하는 명분은 이것이 요격미사일 수를 제한한 ABM을 파괴해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한국정부라고 모르고 있었을까.

단순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의 협력을 얻으려 한 조치였을까. 이 문제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북.미 제네바 합의의 이행' 과 'ABM의 유지.강화' 라는 공동성명 내용은 단순히 러시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지난달 이정빈 장관은 국회에서 "NMD추진에 앞서 원인 제거가 순서" 라고 말했었다. 클린턴이 추진했던 것처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협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문제는 이처럼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도 정작 국내에서는 "ABM과 NMD는 전혀 관계없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의 '오해' 를 풀어주려 노력하면서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金대통령은 동티모르문제.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클린턴을 끌어들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불상 파괴를 막는 데도 유엔에 서한을 보내는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해냈다.

물론 남북문제가 정치쟁점이 돼 버린 탓도 있지만 초당적 협력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은 힘을 가진 여권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여권 핵심인사들은 "남북관계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차기대권을 차지하지 못할 것" 이라며 정략에 이용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그런 빌미를 줄 수 있다. 랄프 코사 미 전략문제연구소장도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북한이나 미국이 아니라 한국 내부에 있다" 고 지적했다.

워싱턴 길에 오르기 전 金대통령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전화를 건 것 같은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진국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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