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국내 유전학 초석 다진 '초파리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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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포도나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윙윙' 거리며 꾀는 초파리는 일반인에겐 참으로 귀찮은 존재다.

지난 4일 74세로 별세한 원로 유전학자 송암(松巖) 이택준(李澤俊)중앙대 명예교수는 때론 징그럽기까지 한 이 미물들과 40여년을 동고동락했다.

스스로 "내 인생에서 사람말고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 초파리였다" 고 회고했을 만큼 그에겐 초파리가 곧 벗이었고, 현미경이 애인이었다. 현미경을 너무 들여다봐 허리까지 구부정해졌다는 고인을 동료들은 '초파리 박사' 라고 불렀다.

스승인 김준민(金遵敏.87)서울대 명예교수의 회고다.

"초파리가 있을 법한 곳에서는 발걸음부터 경쾌해졌습니다. 포충망을 가볍게 휘둘러 잡은 초파리를 허리춤에 차고 있던 병 속으로 집어넣는 모습이 그렇게 신명나 보일 수 없었죠. 그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았어요. 말없이 자연에 몰두하면서 초파리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습니다. "

초파리는 신 것을 좋아해 붙여진 이름. 크기가 보통 파리보다 작아(2~3㎜) 좁은 공간에서도 여러 마리를 기를 수 있고 보름이면 한 세대가 끝나, 외국에선 1930년대부터 유전학 재료로 활용해 왔다.

고인은 56년부터 이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뒤처진 국내 유전학 연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역저 『초파리의 진화』는 이 분야의 권위있는 저술로 꼽힌다. 새로운 종(種)을 발견해 학명을 짓는 것이 큰 영예인 생물학계에서 그가 찾아내 이름을 지은 신종만도 17개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드문 성과라고 학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고인은 초파리와 '교유' 하기 위해 주말만 되면 계룡산.봉황산.한라산에서 설악산.비무장지대까지 깊은 산속을 헤맸다.

때론 초파리를 잡으려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했다. 62년에는 대관령에서 채집을 하던 중 숙소인 고랭지시험소로 국군 수병이 찾아와 "간첩이 넘어왔으니 주의하라" 고 경고했다. 밤새 총격전 소리가 산골을 떠나가게 할 정도였지만 고인은 다음날 산속 깊숙이 걸어놓은 과일 트랩(trap)으로 가 채집을 강행했다. 이 때 잡은 것 가운데 하나는 훗날 신종으로 분류됐다.

지금도 후학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초파리를 애지중지 관찰하던 노학자의 모습이다.

"광릉에서 잡아온 한 마리가 마취된 채 공중으로 날아갔는데 그때 아까워하시던 모습이란…. 웬만한 일에는 쓰다 달다 내색조차 않던 분이었습니다. " (이복원 중대부고 교장)

"제주도에서 채집한 초파리의 생식기를 수산화칼륨 용액에 넣고 끓이던 중이었습니다. 용액이 심하게 끓어올라 생식기의 끝부분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표본을 다룰 때는 온 정신을 쏟으라' 고 꾸중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김남우 경산대 교수)

그가 학문에만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최상임(76)씨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세에 두 살 연하의 남편을 맞은 최씨는 "평생 허튼 행동을 할 분이 아니다" 는 믿음으로 연구만 하는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고인의 학문적 성과는 자신의 열정을 씨줄로, 부인의 믿음을 날줄로 곱게 짜낸 아름다운 것이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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